제111차 간토학살 증언기록 공동학습 및 번역모임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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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1차 간토학살 증언기록 공동학습 및 번역모임 안내
  • 김종수
  • 승인 2024.03.11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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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쿄지역에서의 간토학살 1100가지 증언 (니시자키마사오, 봉선화회 -
#간토학살 #기억과평화를위한1923역사관
#간토학살 #기억과평화를위한1923역사관

 

지난 2021년 7월 13일에 시작하여 매주 화요일 저녁 7시 30분 줌을 통한 온라인 학습모임이 만들어졌다. 햇수로는 4년차이고, 줌회의 자동녹화기록을 보니 지금까지 21년은 19회, 22년에는 40회, 23년에는 42회, 그리고 올해 8회까지 총 110회동안 줌을 통한 학습회가 진행되었다. 

공동번역학습회에는 韓日시민, 그 중에는 在日코리안(뉴커머&올드커머)이 참여하여 두 언어 모두를 능숙하게 사용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소통역할, 그리고 1920, 30년대 일본어를 번역하는 데 올드커머의 역할이 중요하고, 일본어를 모르더라도 일본어 직역의 어색함을 부드럽게 해주는 각자의 역할이 있어 공동번역의 묘미가 있다.  회원중에는 SNS를 통해 알게되어 이 시기에 뭔가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기도 하여 초벌번역하는 일에 참여한 인연으로 계속 학습회원이 되기도 했고, 또 어떤 분들은 진행자의 요청에 일정기간동안 초벌번역에 참여해 주시고 매주 두시간가량 정기적으로 밤에 모이는 것이 쉽지 않아 중도에 빠진 멤버들도 있다. 

기타큐슈의 80대 올드커머는 옛 일본어의 느낌은 알고 있지만 표준 한국어로의 번역이 쉽지 않아 격세지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직역과 의역사이에서 늘 온라인 줌학습회에는 종종 긴장감이 흐를 때가 메 모임마다 한 두번은 있어, 그 어색한 분위기의 풀어가는 역할은 진행자의 몫이다.

3월 12일 화요일 저녁 7시 30분, 벌써 111차이다. 분꾜구에서 일어난 학살에 대해 계속 학습하고 공동번역하는 날이다. 분꾜구의 초벌번역은 기후에 사는 진대철 박사가 맡아 진행 중이다.  

시마나카 유우조「사회운동가. 코히나타다이마치에서 피해」 
-- 2024년 3월 5일 학습회에서 공동번역한 증언의 일부

............ (빨간 색은 조선인사냥에서 나선 무리들, 파란색은 근거도 없이 조선인을 방화범으로 몰아 학살하려는 이들을 꾸짖는 시마나카 유우조의 발언)

이때 까지만 해도 아직 자경단과 같은 귀찮는 조직은 없었다. 그러나 양철통을 치거나 딱딱이를 치며, 여러 가지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걷는 젊은이들의 무리는 있었다. 그것은 우리가 사는 코히나타다이마치 부근의 사람이 아니라, 모두 타지역 사람과 같았다.

[중략] 2일 밤이라기보다는 3일 새벽이었을 것이다.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는 20~30명의 젊은이 한 무리가 손에 손에 무기를 들고 외쳤다. “조선인 300명의 무리가 지금 이 구세야마(久世山)를 향해서 몰려오고 있답니다. 여자나 아이는 도망가 주세요. 남자는 모두 무기를 들고 여기서 막아주세요” 

이 말을 들은 피난자들은 갑자기 여기저기서 떠들기 시작했다. 여자들은 새파랗게 질려 도망갈 준비를 했다. 자고 있던 아이들은 울기 시작했다. “자, 큰일 났다”라며, 남자들은 모두 손에 죽창 곤봉을 들고 일어났다. 

“적이 어디있냐. 어느 방면이야” 

여기에 이르러 나의 온몸은 분노에 떨었다. 이 얼마나 발칙한, 그리고 우매한 민중인가! 나는 그러나 조용히 말했다.

"너희들은 아니, 여기서 조선인을 상대로 전쟁을 시작하려는 것인가?"

젊은이 중 한 명은 내 얼굴을 보고 잠자코 있었다.

“자네는 조선인 조선인이라고 하는데 무엇을 증거로 조선인이 불을 질렀다고 하나. 조선인 중에도 나쁜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왜조선인 모두가 방화범이라고 단정하는 것인가. 일본인 중에는 조선인보다 더 나쁜 사람이 많을 것이다. 자네들은 사사건건 조선인을 모조리 때려죽일 셈인가?”

내 목소리는 점점 격해졌다. 가급적 침착하게 말을 하려고 하지만 그 목소리는 내가 생각해도 놀라울 정도로 컸다.

"조선인이든 규슈인이든 같은 일본에 살고있는 동포들 아닌가. 같은 지진을 당해 기댈 곳이 없는 딱한 이재민이 아닌가. 너희들은 그것을 도우려고 하지 않고 때려 죽이려고 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생각이냐? 만약 그런 일을 했을 때, 장차 일본에 어떤 화를 일으킬지 생각해 본 것인가"

“뭐야, 뭐야. 바보 같은 소리 하는 놈이 있군. 어디 놈이야”

“일본 인민(人民)이면서 수상한 말을 하는 놈이다”

"때려, 때려"

“때려 죽여”

군중은 나를 에워쌌다. 나 자신은 위험을 느끼지 않았지만, 그러나 달리는 호랑이같은 기세는 이제 어쩔 수 없다. 손에 쥔 굵직한 대나무 막대를 휘두르며 나는 무리의 수뇌자로 보이는 나이 많은 남자에게 바싹 다가갔다.

“선인이 300명이나 된다는데, 과연 모조리 악인이라고 자네는 인정합니까”

"당신은 전혀 저잣거리의 사정을 모르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정하고 말 것도 없어. 모두가 불을 지르고 다니는 있거든”

"좋아. 확실히 그렇다면 나도 여기서 너희들과 함께 싸우자. 내지인이든 조선인이든 그런 발칙한 놈에 대해서는 용서하지 않겠어. 그런데 너, 만약에 그게 아니면 어떻게 할 거냐. 내가 경찰에 가서 물어보고 오마. 경찰에서는 그것을 뭐라고 인정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올 거다. 그때까지 대기하라”

"경찰 같은 거 믿을 수 있겠냐?"

"경찰이 말하는 것을 믿지 않고 자네들이 말하는 것을 믿을 수 있겠는가?"

거기에 한 젊은이가 말문을 열었다.

"저는 경찰서에 갔다왔는데 경찰이 말하는 것을 전혀 믿을 수 없습니다"

“경찰에서 피난민일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을 자네들이 마음대로 방화대라고 정해 버린거지. 그렇지”

“제멋대로 결정한게 아니야. 조선 사람으로 보이면 닥치는 대로 죽여버리라는 명령이 와 있어. 하릴없이 영문도 모르는 소리를 하다간 때려죽이고 말 거야

조금 떨어져서 그렇게 호통치는 자가 있다. “그래 맞아, 해치워, 해치워라."

"이보게들,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말고 정신을 좀 차리게. 알겠나? 너희들의 기분은 나도 알아. 우리도 같은 일본인이다. 그러나 그런 난폭한 짓을 한 결과가 얼마나 중대한 일인지 생각해보라. 만약 자네들이, 그들을 조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해치우려 한다면 당치도 않은 일이다. 나는 여기서 조선인 편을 들어 너희들과 싸우겠다.”

그렇게 말하고 나는 그들을 노려보았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나이 든 남자는, 주위의 사람에게 무언가를 속삭였다. 내가 몇 마디 하는 동안 그들은 입을 다물고 있었다. 나는 이미 할 말을 다했기 때문에 조용히 그들 곁을 떠났다

날이 새기 시작했다. 이때가 되어도 그들 이른바 300명의 조선인 무리들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피난자들은 겨우 진정되었다. 그러자, 지금까지 흥분해 있던 젊은이들은, 줄줄이, 웅성웅성, 뭔가 말을 주고받고 있었는데, 끝내 그중 한 사람이 마지막으로 한 말은 나에게 영원히 잊지 못할 수수께끼이다.

“야, 여기서는 안되겠다. 저쪽으로 가자, 저쪽으로." 그렇게 그들 중 한 무리는 오토와 쪽을 향해 떠났다.

그 다음날부터 자경단이라는 것이 우리 동네에도 조직됐다. 그것이 조직되기 전에, 지금 말한 것과 같은 젊은이 무리가, 각 구 각처에 출몰하여 활발히 활동하였던 것은 사실이다. 누구의 명령에 의해서인지 그것은 모른다. 어쨌든 그것이 이른바 자경단이라는 것의 정체인 것은, 다이쇼 지진 재해사를 엮을 때 빼놓아서는 안되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자경단·지진 당시의 추억', '문화운동' 1924년 9월호 → 금병동 『조선인 학살에 관한 지식인의 반응1』 녹음서방, 1996년)

코히나타다이마치(小日向台町)에서 재난을 당한 시마나카 유우조(島中雄三, 당시 사회운동가)가 남긴 증언이다. 위에서 인용한 그의 증언을 보면 '조선인 사냥꾼' 무리들이 떠나기 전 “야, 여기서는 안되겠다. 저쪽으로 가자, 저쪽으로." 라는 말의 의미를 되뇌이게 된다. 뭐가 안되겠다는 것이고, 저쪽에 가서 무엇을 자기들 뜻대로 하려는 것인가?

간토학살의 책임은 분명 일본의 국가권력이다. 저들은 천재지변을 당한 일본인들에게 권력유지를 위해 유언비어를 확산시켜 계엄령을 내린 후 각 지방으로 공문을 보내어 자경단을 조직하도록 하여, 그들에게 조선인들에 대한 악의적 누명을 씌워 '적(조선인)을 XX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해서 사실확인도없이 조선인을 마치 동물사냥하듯 잡아 그 자리에서 죽여도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어했던 일본 자경단들의 심리를 이해하기란 간단치가 않다. 아무리 국가권력이 '국민'들에게 내린 명령이라 하더라도 '생명을 함부로 해할 수 있다'는 사고가 내면화되는 과정을 추적해 들어가야 한다.  '국적과 민족과 인종과 이념에 사로잡혀 이른바 우리와 같지 않은 사람이라 하여 생명을 함부로 죽여도 된다는 생각은 과거 뿐 아니라 지금도 버젓이 당연한 사회적 공감대인양 반인도적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당당하기 때문이다. 

시마나키 유우조( 島中雄三)가 수수께끼라고 한 말은 지금도 누군가 집중적으로 풀어내려 하지 않았고, 순진무구한 한 어린아이가 어떤 과정을 통해 살인(특정집단에 대한 폭력)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며 그것이 상식이라고 여기며 주변사람을 동참하게 하는지에 대한 '그 진행과정'에 대해 깊이 들여다 보아야만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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