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지구에서의 간토학살 1100증언기록 연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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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지구에서의 간토학살 1100증언기록 연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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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11.17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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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はじめに / 証言集を作るまで
- 荒川河川敷に追悼の碑を

아라카와(荒川) 하천(부지)에 추도비를
자료발굴 - 西崎雅夫, 번역 - 조영석 / 번역팀 공동수정 

학살 사건 현장인 제방이나 하천(부지)은 국유지이므로, 추모비 건립에 관한 협상을 당시의 건설성(建設省)과 여러차례 하였지만 국유지에 추모비를 건립하는 허가가 내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 지역 스미다구(墨田区)가 협력을 해 준다면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여 구의회에 추모비 건립에 대하여 협력 해 줄 것을 진정하였다. 그러나 국유지에 추모비를 건립하는 허가는 내려지지 않았다. 그 때가 2000년이었는데, 일단은 구의회가 '계속 심의'를 하였지만, 이듬해인 2001년에 불채택되었다.

이렇게 해서 공적(公的)인 장소에 추모비를 건립하는 길이 막혀 버렸다. 그래서 그 다음은 사유지에 추모비를 건립하는 것으로 목표를 정하였다. 그러나 현장에 가까운 곳에 적당한 사유지가 매물로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다.

우리는 매년 하천(부지)에서 추도식을 가졌다. 글고 그 후에는 제방 밑에 있는 선술집(居酒屋)에서 종료 모임을 가졌었다. 그때, 추모비 건립에 대하여 선술집 주인과 상담했다. 그러자 주인은 "땅을 찾기가 어렵겠죠. 나도 이젠 나이가 많아서 가게 문을 닫으려고 해요. 그러므로 이 땅을 당신들에게 팔테니까 여기에 추모비를 건립하세요" 라고 말했다.

저는 이렇게 해서 2008년에 선술집을 구입한 후에 그 곳을 개조하여 살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갑자기 추모비를 세워서 이웃들로부터 민원이 발생하면 곤란해지므로 미리 주민들로부터 양해를 얻어 두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듬해인 2009년 9월에 "관동대지진 때 한국, 조선인 순난자(殉難者) 추도비"가 건립되었다.

기념비가 건립되자마자 방문했던 카츠시카구 요츠기(葛飾区四つ木)에 사는 주민의 말을 잊을 수 없다. "저의 외할아버지로부터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들을 죽였던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다." "5, 6명은 죽였다. 몇 명의 마을 사람들이 뒤에서 철 막대기로 때렸다. 정신을 잃은 사람에게 대답하지 않는다고 여러 번을 때렸다고 자랑했다. 그리고는 조용히 입 다물라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자랑처럼 얘기했다." 이런 증언들을 몇 번이나 듣는 동안에 이 추모비가 그 당시의 사건을 공개적으로 발언하게 하는 장소를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저는 2015년에 추모비 옆에서 이사했다. 그리고 빈집은 지금 '봉선화의 집'이라는 이름으로 작은 자료관과 회의실로 기능을 하고 있다.

荒川河川敷に追悼の碑を

虐殺事件現場である土手や河川敷は国有地なので、当時の建設省と追悼碑建立に関する交渉を何度も行った。だが国有地に追悼碑を建立する許可はりなかった。地元の墨田区が協力してくれれば可能性が生じるかと思って、区議会に追悼碑建立に協力するよう陳情を出したのは年だ。一度は「継続審議」となったが、翌2001年に不採用となった。

公的な場所に追悼碑を建立する道が閉ざされてしまったので、その後は私有地建立を目ざすことになった。でも、現場に近い適当な私有地が売りに出されることはなかった。こうして数年が過ぎた。
私たちは毎年、河川敷で追悼式を行った後、土手下の居酒屋で打ち上げをしていた。他にどうしようもなくて、その居酒屋のご主人に相談した。ご主人は「土地を見つけるのはむずかしいだろう。俺ももう歳だから、店をたたんでこの土地をあんたらに売ってやるから、ここに追悼碑を建てたらいいよ」と言ってくれた。
2008年、居酒屋を買い取って改装し、私はそこに住み始めた。いきなり追悼碑を建ててもめても困るので、あらかじめ近所の了解をとっておくためだ。翌2009年9月「関東大震災時韓国・朝鮮人殉難者追悼之碑」が建った。
碑ができてすぐに訪れた葛飾区四つ木の人の言葉が忘れられない。「私の母方の祖父が関東大震災のときに朝鮮人を殺した話を何度も聞かされた」「5、6人は殺した。村の者数人で(朝鮮人の)後ろから鉄の棒で叩いて、気を失ったのを返事しないからと、何度も叩いたと得意気だった。そして、だまってろよってじいさんは、自慢話のように、語っていたよ」。こうした話を7ちに、追悼碑が事件をオープンに語る場を提供しているようにきた。2015年に私は追悼碑の隣から引っ越し、空き家は今「ほうせんかの家」という名前でミニ資料館・会議室として機能してい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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