明治になって日本領土に編入したのだから日本のものという論法が通じるわけがな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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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治になって日本領土に編入したのだから日本のものという論法が通じるわけがない。
  • kuwano yasuo 기자
  • 승인 2020.03.27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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僕らが子どもの頃、社会科教科書で「竹島を不法占拠」と習った記憶はない。若い頃も聞かなかった。若い頃は「非武装中立論」に対してソ連が攻めきたらどうするかと、自衛隊増強が図られていった。ソ連が解体されて弱体化された時、ロシア経済はかなり苦しくなった時もあったとか、その頃に外交努力があれば北方領土は少しは帰ったかも知れない。そしてその頃からか竹島返還が言われ出した。竹島の島根県への編入は1905年1月28日、日露戦争のさ中のドサクサであり、当時植民地朝鮮は日本の武力下の保護国状態だった。
さらにさかのぼれば1895年、日清戦争後に帝国日本は景福宮に乱入し明成皇后を暗殺し、その後次々に武力で国際法上無効とされる協定を結ばせて、朝鮮を保護国にしその財政権も外交権も、その独立を奪った状態下での竹島の日本編入であった。
竹島(独島)は鬱陵島からは今でも年に数回は肉眼でも見える距離にある。隠岐の島からは当然に見える距離ではない。
古くから朝鮮の領土とされて来たのは事実であろう。江戸時代に日本の漁民が竹島で漁をしたことがあるからといって明治になって日本領土に編入したのだから日本のものという論法が通じるわけがない。

不法な日本の侵略行為によって得た領土はすべて返還すべきことはカイロ、ポツダム宣言により決定されている。

このような教科書を使って真っ白な子どもに隣国への偏見の種がまかれる。やがて成長して大人になれば、本屋に行くと嫌韓本があたり狭しと並べられ、ネットでも事実にもとづかぬ情報でその偏見はさらに固定化されていく。
こんな教科書を使って良いのか、韓国、朝鮮の歴史学者ともよく話し合って決めなければならない。
隣国への偏見、脅威を利用してまたも国内で差別や軍備強化に利用されるだけではないか。
ハンギョレ新聞が取り上げるのは当然であり、日本、韓国、朝鮮の歴史学者間での公開議論が必要である。先ず日本の学者間での議論が公開で行われるべき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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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이 어렸을 때, 사회과교과서에서 「(한국의) 죽도(독도) 불법점거」라는 내용을 배운 기억은 없다. 젊어서도 듣지 못했다. 젊은 시절에 「비무장중립론」에 대하여 '소련이 공격해 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 하며 자위대를 증강하려는 의도를 키워갔다. 소련이 해체되어 (영향력이) 약화되었을 때, 혹은 러시아 경제가 상당히 힘들었을 때, 그 시기에 외교노력이 있었다면 북방 영토는 조금은 돌아갔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시기부터인가 '죽도(독도) 반환'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죽도(독도)의 시마네현의 편입은 1905년 1월 28일, 일러전쟁의 한창 혼잡한 때이며, 당시 식민지 조선은 일본의 무력아래의 보호국상태였다. 게다가 거슬러 오르면 1895년, 청일 전쟁 후에 제국 일본은 경복궁에 난입해 명성황후를 암살하고, 그 후 잇달아 국제법상 효력이 없는 협정을 무력으로 강행했다.  한국을 보호국으로 해 그 재정권도 외교권도, 그 독립을 빼앗은 상태아래에서의 죽도(독도)의 일본 편입이었다.

죽도(독도)는 울릉도에서 지금도 1년에 수차례 육안으로도 보이는 거리에 있다. 오키노시마 로부터는 당연으로 보이는 거리가 아니다. 옛부터 조선의 영토로 여겨져 온 것은 사실일 것이다. 에도 시대에 일본의 어민이 죽도(독도)에서 고기잡이를 한 적이 있다고 하여 메이지시대에 일본 영토에 편입한 것이기 때문에 일본의 영토라고 하는 논법이 통할 까닭이 없다. 불법한 일본의 침략 행위에 의해 얻은 영토는 모두 반환해야 할 것은 카이로, 포츠담 선언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

교과서를 통한 이러한 교육은 새하얀 어린이에게 이웃나라에 대한 편견의 씨앗을 뿌리게 된다. 성인이 되어 책방에 가면 혐한책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고, 인터넷에서도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 정보로 인해 그러한 편견은 더욱 고정화되어 간다.

이런 교과서를 사용해도 되는 것인가? 한국, 조선의 역사학자와도 잘 의논해서 정해야 된다. 이웃나라에의 편견, 위협을 키워서 또 다시 국내에서 차별이나 군비강화에 이용하려는 것은 아닐까?  한겨레 신문기사의 문제제기는 당연하다. 일본, 한국, 조선의 역사학자간에서의 공개 논의가 필요하다. 먼저 일본의 학자간에서의 논의가 공개로 행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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