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4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간토학살사건의 성명, 한국의 시민사회 줄이어 서명 간토학살사건의 성명, 한국의 시민사회 줄이어 서명 성명서에 서명하신 분들의 마음을 모아 진실,화해위원회에 간토학살사건의 조사를 요청하는 청원서에 담아 제출할 것입니다. 서명해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1923한일재일시민연대, 사회적협동조합 기억과평화, 1923제노사이드연구소 일동 동북아언론보도 | 김종수 | 2021-09-24 11:26 감사라는 말로도 부족한 오늘이었습니다. 감사라는 말로도 부족한 오늘이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한 매우 어려운 시기에 기억과 평화를 위한 1923역사관의 리모델링 완공 감사예배에 함께 해 주신 귀한 발걸음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바쁘신 일정 속에서 역사관 완공을 축복해 주신 한국기독교장로회 이건희 총회장님, 김은경 부총회장님, 최형묵 교회와사회위원장님, 대전노회장 김종희 목사님과 한만택 부노회장님, 윤호석 목사님과 강정화사모님, 한만욱 목사님, 이재관장로님, 유선형장로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어머니 한맹순 권사님께서 병중에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제자의 부족함을 든든하게 채워주시려 1923한일재일시민연대의 공동대표로서 1923역사관이용안내 | 미디어기평 기자 | 2020-11-27 01:24 천신만고 끝에 살아 돌아온 자들이 남긴 이야기들 천신만고 끝에 살아 돌아온 자들이 남긴 이야기들 신홍식 씨(전라남도 광주 출신 1905-1994)는 19살 학생 때 도쿄 구단시타(九段下)에서 간토대진재를 겪었다. 료코쿠(両国)의 육군피복공장터로 몸을 피했지만 위험을 느끼고 그곳을 빠져나갔다. 도중에 여학생을 도와 이치카와(市川)로 데려다 준 후 지바의 도가네까지 도망갔지만 자경단에게 습격 당할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도가네 경찰서로 보호를 요청하여 그곳에서 나라시노 수용소로 보내졌다.수용소에서는 도망치려 했던 중국인이 군인에게 사살당하는 것을 목격했다. 수용소 내의 자치조직에 관여했던 신홍식 씨 본인도 하마터면 살해당할 뻔한 순 사진자료 | 김종수 | 2020-05-03 11:43 간토대학살에 비쳐본 일본 제국의 어제와 오늘 70년 전 제2차 세계대전은 막을 내렸고, 일본의 패전은 전쟁과 억압에 지친 식민지와 “황국 신민”의 해방, 곧 일본 제국의 해체를 의미했다. 그러 나 1945년 열한살 어린이로 홋카이도에 끌려가 성노예 생활을 강요당한 김 외한 할머니는 그후 70년을 기다렸음에도 불구하고 입에 담기조차 두려운 반인도적인 불법행위에 대한 일본 정부의 진정어린 사죄와 보상을 받기는 커녕 이미 드러난 공권력에 의한 일본제국의 범죄 사실조차 부정되고 있는 오늘의 현실을 안타까워하시며 돌아가셔야 했다. 임종에 앞서 김 할머니는 “그동안 보이지 않는 많은 도 학술자료 | 이진희 (미 이스턴일리노이대 사학과 교수) | 2015-10-06 22:51 처음처음1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