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토 대학살 -학살의 서막 계엄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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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토 대학살 -학살의 서막 계엄령
  • 김창규
  • 승인 2020.09.05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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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토 대학살

-학살의 서막 계엄령

김 창 규
김 창 규

 

낮이고 밤이고 골목과 거리 집집마다 통곡 소리

그 난리에 조선인의 집은 한 채도 남지 않고 불타버렸다

연기가 하늘을 치솟고 붉은 피가 강을 이루었다

우물에는 독이 있을까 그 물을 한 바가지 들이켜고

너무 많은 피를 흘려 조선인 비참하게 죽는다

일본인의 조선인 학살은 야만을 넘어 악마였다

어떻게 사람이 사람을 짐승처럼 잡아 먹는가

잡아 먹는다는 것은 살인, 살해, 학살이라 말할 것이다

1923년의 9월 1일 그날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한 조선 청년의 이야기다 그는 조선 반도의 남쪽이 고향이다

어느 작은 도시에서 살다가 일본에 유학을 왔다

그가 본 것은 사실대로 말하면 끔찍해서 들을 수 없다

교토의 거리에서 그가 도망친 곳은 산 밑에 있는

간신히 건물의 형태를 유지하고 선 신사의 창고였다

멀리 도시는 연기로 가득 찼고 싸이렌 소리가 요란했다

일본 비행기가 공중을 날고 있었다

대지진이 도쿄를 급습했던 9월1일은 일본 정치의 격변기였다

당시 일본 수상은 우치다 야스야였다

다이쇼 일본 왕의 안전을 확인한 그는 불안했다

무엇인가 해야 했다 수 십만 명을 안심 시키고

대지진의 참상을 진정 시키려면 다른 방안이 있어야 했다

경시청은 불타오르기 시작했고 온 도시가 화염에 쌓였다

이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은 조선인 사회주의자들이라고

그들이 독극물을 우물에 넣었으며 방화를 했다고

지목하자고 회의를 끝냈다

다이쇼와 일본 내각은 계엄령을 내리기로 했다

무조건 조선인을 체포하여 그들을 처형하는 일이었다

일본의 자경단 보다 경찰 군인들의 조선인 학살이 심각했다

살려고 도망가는 조선인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조선의 3.1운동 탄압에 압장을 섰던 일본인 아카이케는

결심을 드러냈다 조선인 사회주의자들을 청소하여야 한다는 것을

그는 두 주먹을 쥐고 칼과 권총을 찬 채 밖으로 뛰어나갔다.

경시청 불타고 있었다

단지 조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체포되어 수용소로 끌려가고 죽임을 당했다.
단지 조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체포되어 수용소로 끌려가고 죽임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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