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토 대학살 -유언비어. 계엄령. 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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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토 대학살 -유언비어. 계엄령. 학살
  • 김창규
  • 승인 2020.09.05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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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토 대학살 - 유언비어. 계엄령. 학살

김창규
김창규

 

1923년 9월1일의 아침은 고요했다

평화롭게 모두가 일터로 나가고 집에는

아녀자와 늙으신 부모님들이 계셨다

조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6,000명이 학살 된 사건은 지진이었다

조선의 해방운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으며 사회주의

즉 공산주의 타도를 내건 일본 정부의 음모였을 것이다

바람은 솔솔 불고 해는 해는 어느새 이마 위에 빛났다

그러다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엄청난 비가 내렸다

조선반도는 이미 일본의 침략으로 억압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아버지가 죽고 일가족 모두가 학살 되리라 상상을 못했다

일본인들은 잔인하고 악랄했다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 조선인을 개처럼 돼지처럼 죽였다

아버지는 죽어가면서 말했다고 한다

조선으로 돌아가 꼭 사실을 알려 달라고

하지만 모두 처형되거나 무참하게 학살 되었기 때문에

간토에서 학살은 전해지지 못했다

점심때가 되었을 때 지진이 발생했는데

도쿄와 요코하마 주변에서 세 번의 여진이 발생했다

정오가 되기 일분 전 11시 58분 44초

7.9의 대지진이 관동 일대를 흔들었다

건물이 무너졌고 점심 밥상이 뛰어 올랐으며

책 꽃이 책들과 찬장이 쓰러졌다

공포가 시작되었고 10분 간 지축이 흔들렸다

여기저기 아비규환이었다

일본 사람들은 밖으로 뛰어나갔다

주변을 연기와 먼지가 뿌옇게 하늘을 덮었다

지진으로 인해 화재가 발생하였다

조선인들도 집에서 뛰쳐나왔다

건물이 불타기 시작했고

땅이 크게 벌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공포였다 아니 그것은 처음 보는 지진이었다

조선인들은 서로를 알아보았다

어디로 피해야 할지 몰랐다 두렵고 떨리기만 했다

도쿄는 이미 복구할 수 없는 재앙을 만났다

검고 시뻘건 불길이 타 올랐다

감당할 수 없는 대 지진의 참상은 말 할 수 없었다

유언비어는 아주 간단했다

조선인이 방화를 했다

우물에 독을 풀어 넣었다

유언비어는 빠르게 확산 되었다

계엄령이 어떻게 떨어졌는지 모르는데

일본 군대가 도시 전체를 장악하였고

조선인들은 그 자리에서 체포되거나 죽임을 당했다

일본인 자경단은 칼을 들고 조선인을 난자 해 죽였다

학살은 시작되었다.

아이들이 조선인학살을 목격하고 그린 그림
아이들이 조선인학살을 목격하고 그린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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