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토대학살’ 일본에 한마디 않던 정부·여당…국내용 이념공세는 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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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토대학살’ 일본에 한마디 않던 정부·여당…국내용 이념공세는 열일
  • 미디어기평 기자
  • 승인 2023.11.09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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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서영지 기자, 김미나 기자, 장예지 기자
지난 1일 오전 일본 도쿄에 있는 요코아미초 공원에서 1923년 도쿄 일대를 강타한 간토대지진 당시 학살된 조선인들을 추모하기 위한 위령 행사가 열렸다. 추도비 앞에 참석자들이 바친 꽃이 올려져 있다. 연합뉴스
지난 1일 오전 일본 도쿄에 있는 요코아미초 공원에서 1923년 도쿄 일대를 강타한 간토대지진 당시 학살된 조선인들을 추모하기 위한 위령 행사가 열렸다. 추도비 앞에 참석자들이 바친 꽃이 올려져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주최로 일본에서 열린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추모식에 참석한 윤미향 무소속 의원을 겨냥해 “반국가행위에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윤 의원이 남북교류협력법을 위반했다고 보고 사실확인 작업에 들어갔고, 국민의힘은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에 윤 의원을 제소했다. 육군사관학교(육사) 내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논란 등 이념 전쟁으로 지지율 하락에 직면한 윤 대통령과 여권이 윤 의원을 지렛대 삼아 반전을 꾀하려는 모습이다. 한편에서는 100년 전 조선인을 겨냥한 일본 간토대학살을 놓고 일본 정부에 사과나 유감 표명을 요구하지 않고 침묵해온 대통령과 정부·여당이 반공 공세에만 열을 올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자유민주주의 국체를 흔들고 파괴하려는 반국가행위에 대해 정치 진영에 관계없이 모든 국민과 함께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1일 총련이 주최한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추모식에 윤 의원이 참여한 것을 겨냥한 것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대법원에서 조총련에 대해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라고 확정 판결을 내린 적이 있다”며 “(윤 의원의 총련 행사 참석은) 헌법 가치가 크게 위협받을 수 있는 문제”라고 했다.

국무위원들도 가세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이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결산 심사에 출석해 “조총련은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로, 북한의 대리기관이고 북한의 주일대표부의 성격을 갖고 있다”며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현직 국회의원이 조총련 행사에 참석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도 “윤 의원은 조총련 행사 참석과 관련해 통일부에 사전 접촉 신고를 한 바가 없다”며 “윤 의원이 현행법을 위반했다”고 말했다. 남북교류협력법은 북한 주민을 접촉하기 앞서 통일부에 신고하게 돼 있다. 북한의 노선에 따라 활동하는 국외단체도 북한 주민으로 간주되는데, 이에 따라 총련도 신고 대상이라는 것이 통일부의 설명이다.

윤미향 무소속 의원.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윤미향 무소속 의원.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여당도 일제히 윤 의원 때리기에 나섰다. 국민의힘은 이날 윤 의원의 징계안을 국회 의안과에 제출했다. 김기현 당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윤 의원은 북한 조선노동당 간부에 더 적합한 인물”이라며 “국회의원은 물론이고 대한민국 국민 자격도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김 대표는 윤 의원과 더불어민주당과의 관련성을 부각하려고 애썼다. 김 대표는 “윤 의원은 (과거) 민주당 소속이었고 지금도 민주당과 공생 관계”라며 “민주당은 (윤 의원) 제명 등 단호한 조치에 동의해 달라”고 말했다.

윤 의원이 국회사무처 등에 국외 출장 협조 요청을 하면서 행사를 주최한 총련을 의도적으로 숨겼다는 의혹도 불거진 상태다. 그가 일본 출국에 앞서 국회와 정부에 협조를 요청한 공문에는 행사 주최를 총련이 아닌 ‘한국 간토학살 100주기추도사업추진위원회’로 표기했다는 이유에서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행사 포스터에 총련 주최라고 써 있고, 위원회(가 적힌 문구)는 포스터 어디에도 없다”며 “사기성 출장”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추모제에 참석한 이들은 역사인식이 부재한 정부·여당의 색깔론 공세를 비판했다.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은 “간토학살 추모는 조총련뿐 아니라 일본 시민사회가 주도해 수십년간 해온 것”이라며 “한국 정부는 (학살에) 침묵했음에도 한국과 일본의 시민들은 연대하며 희생자를 추모했다. 행사에는 간토대지진 유족들도 참석했는데 이들을 모두 국가전복세력으로 모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간토학살 100주년 추도사업추진위 관계자도 “간토 대학살 100년이 지나도록 정부가 진상규명, 특별법은커녕 메시지 하나 내놓지 않을 때 재외동포들은 진상규명과 추모사업에 애썼다”며 “오랜 세월 이어진 추모에 참석한 것을 왜 이념의 잣대로 재단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간토대지진은 1923년 9월1일 일본 도쿄를 비롯한 간토 일대에 발생한 규모 7.9의 강진으로, 당시 일본 경찰이 개입해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리면서 조선인에 대한 무차별 학살이 일어났다. 하지만 한·일 정부 모두 이 문제와 관련한 진상규명에 적극적이지 않았고, 대통령실도 이에 대해 일본의 사과 등을 요구한 적이 없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 김미나 기자 mina@hani.co.kr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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