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법원, ‘베트남 민간인 학살’ 한국 배상책임 첫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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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법원, ‘베트남 민간인 학살’ 한국 배상책임 첫 인정
  • 한겨레신문 최민영기자
  • 승인 2023.02.07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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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건 발생 55년 만에 ‘원고 승소’ 판결
2018년 4월22일 서울 마포구 문화비축기지에서 열린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평화법정에서 퐁니·퐁넛학살 피해자 응우옌티안(앞줄 왼쪽)과 하미학살 생존자 응우옌티탄(앞줄 오른쪽)이 원고로 참석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2018년 4월22일 서울 마포구 문화비축기지에서 열린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평화법정에서 퐁니·퐁넛학살 피해자 응우옌티안(앞줄 왼쪽)과 하미학살 생존자 응우옌티탄(앞줄 오른쪽)이 원고로 참석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피해자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낸 국가배상 소송 1심에서 승소했다. 사건이 발생한 지 55년 만에 처음으로 ‘가해국 한국’이 피해 베트남인에게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판단이 나온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68단독 박진수 부장판사는 7일 베트남인 응우옌티탄(63)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피고 대한민국은 원고에게 3천만100원과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피해의 정도와 배상이 지연된 사정 등을 고려해 위자료를 4천만원으로 정했지만, 원고 청구금액이 3천만100원이라 그 한도에서만 배상책임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베트남전 참전 군인, 당시 민병대원 등의 증언과 응우옌 쪽이 제출한 증거 등을 바탕으로 원고 쪽 주장을 대부분 사실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대한민국 해병 제2여단 제1중대(청룡부대) 소속 군인들이 1호 작전을 수행하던 중에 원고 가족들에게 총격을 가한 사실, 원고의 모친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한 곳으로 강제로 모이게 한 다음 총으로 사살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며 “이런 행위는 명백한 불법행위에 해당하고 원고에게 배상 청구권이 인정된다. 피고 대한민국의 소멸시효 항변은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응우옌티탄은 8살이었던 1968년 2월 베트남 꽝남성 디엔반시 디엔안구 퐁니마을 집 주변에서 한국군 청룡부대 소속 군인들이 쏜 총에 왼쪽 옆구리를 맞아 중상을 입었고, 수술로 목숨을 건진 뒤 지금까지 후유증을 겪고 있다. 당시 가족 5명이 목숨을 잃었고 14살 오빠는 크게 다쳤다. 응우옌티탄씨는 “민간인 학살에 대한 한국 정부의 인정만이 피해자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다. 저를 비롯한 많은 피해자의 명예가 회복되길 바란다”며 2020년 4월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베트남에 머무르고 있는 응우옌은 선고 직후 변호인단과의 전화통화에서 “제가 말한 것이 모두 진실이라고 인정해준 재판부에게 감사하다. 그리고 지금까지 저와 함께 해준 변호인단과 한국 친구들, 시민 여러분께 감사인사를 드리고 싶다. 정말 뛸듯이 기쁘다”고 밝혔다. 소송을 맡은 임재성 변호사는 “오늘 판결로 한국의 사법부가 베트남전 당시 이같은 불법행위가 있었고, 대한민국 정부가 법적 책임을 져야한다는 점을 최초로 확인했다는 점에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최민영 기자 my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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