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토학살의 1100가지 증언 - 기타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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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토학살의 1100가지 증언 - 기타쿠
  • 김종수
  • 승인 2022.05.12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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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과평화를위한1923역사관 한일공동번역

간토학살의 증언들은 초등학생을 증언에서 부터 군대에서 쓴 보고서와 문학, 예술인, 정치인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이들의 증언, 전해들은 이야기, 신문자료 등 다양한 문서양식으로 되어 있다. 

[기억과 평화를 위한 1923역사관]의 <한일공동번역팀>은 니시자키마사오(그룹 봉선화 대표)씨의 책 간토대진재 조선인학살의 기록 "간토지역별 100가지 증언"을 번역하고 있다. 공동번역에 참가자들의 연령대는 30대에서 80대까지, 일본인, 재일코리안(올드커머, 뉴커머), 한국인, 두가지 언어를 유창하게 쓰는 사람에서 모국어만 사용할 줄 아는 사람까지 모여 있다. 번역 혹은 학습에 어느 쪽에 더 무게를 두느냐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대체로 한 번 참여하신 분들은 매주 화요일 저녁 7시 30분부터 9시 30분까지 꾸준하게 두 시간을 집중하고 있다. 

번역 중에 여러가지 암초들을 만난다. 언어에 담긴 사상과 시대적 의미는 한 문장 안에 같은 단어가 쓰였을지라도 종종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경우가 있다. 100년 전에 쓰인 사물과 단어, 지역언어, 지명을 어떻게 읽고 사람의 이름을 어떻게 읽었는지 일본인들도 정확히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다행스럽게 젊은 사람들의 손빠른 인터넷 검색으로 교차검증으로 정확한 일기와 표현을 찾아내면 번역하는 시간이 많이 짧아지게 된다.  그럼에도 한국의 중학생들 수준으로 이해할 수 있는 표현을 골라내기가 쉽지 않아 때로는 약간의 의역이 필요할 때 토론의 시간은 길어진다.  

처음부터 이렇게 길게 이어질 줄은 몰랐다. [기억과 평화를 위한 1923역사관]에서 해야할 간토학살연구서 혹은 각종 보고서, 간토학살관련신문기사, 각 현장 조사 및 추도단체들의 회보 등 번역작업들이 그야말로 산적해 있다. 일본어로 쓰여진 간토학살문서와 서적 사료 등을 번역하여 대중들에게 알기 쉽게 풀어 공개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재정이 투여될 지 어림잡을 수도 없을 지경이다.

끝을 보면 엄두가 나지 않지만 당장 가장 필요한 것을 목표로 두고 현실적인 방법을 선택한 것이 "한일시민공동번역"이었다. 이것은 [기억과 평화를 위한 1923역사관]에 하나라도 정확한 자료를 만들어 대중들에게 알리고자 하는 <1923한일재일시민연대>의 활동가들이 자발적 헌신의 마음으로 재능기부를 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이렇게 계속 하기에는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

어느덧 494쪽 중 1/4 정도 번역을 하고 있다. 이 책은 번역에 참여한 모든 분들의 이름으로 한국어로 번역서를 내고 싶다. 역사를 증언한 다수의 용기있는 시민들, 그리고 증언과 사료를 만들고 모아온 시민들, 그리고 국가에 의한 학살을 감지하고 피해자들은 보듬어 안아주었던 시민들의 마음이 공동번역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것이 간토학살의 야만스런 폭력성에 대항하여, 그리고 끝없이 권력에 의한 나약한 이들을 갈라치기하여 혐오감을 증폭시켜 권력을 유지하려는 국가주의에 맞서는 길임을 알기 때문이다. 간토학살의 진실은 평화로운 따스한 연대(기록, 증언, 번역, 교육, 변증 등)등을 통해 당대의 시민들과 후대의 선한 양심들에게 조금씩 조금씩 드러나고 알려지게 될 것이다. 

이번에는 기타구의 조선인학살기록을 공동번역한 내용을 옮겨 본다. 이번 초벌번역은 유시경 신부가 맡고, 8명의 공동번역자들은 적절한 표현을 위해 다함께 조금씩 의견을 거든다.  합의되지 않는 단어나 문장을 뜻은 빨간표식을 하여 최종 감수자에게 넘기기로 하면서 꼼꼼하게 진행된다. 
 

조선인학살에 관한 기록 - 기타구 편

 

스즈키 츄고(鈴木忠五) [판사, 변호사. 타키노가와의 누나 집에서 지진피해]

[1] 해질 무렵, 어디선가 또 누구랄 것도 없이 조선인들이 복수를 하기 위해 여러 우물에 독을 던져 넣거나 어딘가에서 집단 강도질을 한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이것은 지진이나 화재 이상으로 매우 무서운 일이다. 그런 일은 헛소문에 틀림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사람들은 반신반의하며 큰 불안에 휩싸이게 되었다. 이웃들이 자주 상의해 자경단을 꾸리기로 했고 2, 3명씩 인근 경계를 서는 자, 우물을 감시하는 자, 각각 역할을 정하고 즉시 실행하기 시작했다.

[스즈키 츄고청춘 회상기야자와쇼보(矢沢書房), 1980]

토자와 니사부로 戸沢仁三郎 [사회운동가, 생협운동가] (역주 1889-1974)

[오지의 친구가] 2일에 (유언비어를) 들었다. 메가폰으로 밤에 큰 소리로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던지고 있다”, “조선인이 뭉쳐서 이쪽으로 밀려온다”, “코마츠가와대교에서 어쩌니 저쩌니”. (내가 유언비어를 들은 것은 3).

(조선연구월보196310월호, 일본 조선연구소)

나가이 슈키치 [아스카야마 근처에 거주]

2일 밤 9시경. “형무소에서 탈출한 300명의 죄수가 흉기를 들고 오다이(小台)의 선착장에서 아스카야마 방면으로 오려 한다라고 전해온 이가 있었다. 역시 2일밤 10시경, “오늘 밤 12시에 어제보다 더 심한 큰 지진이 있을 테니 조심하라고 말한 이가 있었다.

여러 곳의 판자 벽에 , , 같은 기호를 쓰고 돌아다니는 사람이 있었다. 는 방화, 는 약탈, 는 능욕을 의미하는 암호이니, 발견하는 대로 경찰에 알려라, 각자 충분히 경계할 필요가 있다 라는 것이 출처를 알 수는 없지만 전해져 왔다.

(나가이 슈키치 편다이쇼진재기다이쇼 진재기록편찬회, 1923)

하키이 코조 波木井 晧三 [연극평론가] (역주:1904-1992, 동경 요시와라에서 출생, 가업에서 뛰쳐나와 신극 운동에 몰입했다. 2차세계대전 후 토호연극부의 촉탁이 되어 가부키, 신파, 후지와라가극단의 공연을 제작했다. 후에 연극평론가)

[3일 새벽] 돌연 사람들이 시끌벅적 (아스카) 산의 정상 쪽으로 제각각 뛰어 올라가는 발자국 소리에 잠에서 깨었다. 인심이 흉흉한 때인만큼 나도 무슨 일인가 하고 사람들의 뒤를 따라 산정으로 뛰어 올라갔다. “, 저건 미카와시마三河島……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소리에, 멀리 타바타(田端)와 미카와시마 방면의 밤하늘이 불꽃으로 빨갛게 비쳐보였고, 먼 곳으로부터 종소리에 뒤섞여 소란스런 이상한 고함 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려 왔다. “저건 불령 조선인이 불을 지르고 있는 거요. 이제 이쪽으로도 몰려올테니 조심하세요라고 군중 속에서 외치는 이가 있다. “뭐라고, 조선인이라고. 못된 짓 하고 있네라고, 분기를 품은 소리가 반사적으로 들려왔다. 군중은 이런 정체 모를 경고에 소란스러워졌다. “여기도 안전하지 않은 건가” 왠지, 한참 먼 곳의 화재가 점차 아스카야마까지 날아와 붙을 것 같은 불안에 휩싸였다. 나는 바로 걱정하고 계시는 부모님께 가서 미카와시마에서 조선인이 방화를 저질렀다고 해요. 여기까지는 거리가 머니까 오지 않을 거에요라고 말했었지만, 지금이라도 조선인이 쳐들어 온다면, 어떤 참사가 일어날 지 몰라, 그런 불안한 상태에 있던 중에 이제 곧 날 밝을 시간이 다가왔다. (하키이 코조다이쇼 요시와라 사적 기록청와방, 1978)

 

요시미 카츠코 [당시 제2 이와부치 심상소학교 아동]

밤이 되어 추위를 참을 수 없어서 나는 이불을 쓰고 잤습니다. 그런데 조선인이 불을 낸다고 사람들이 시끌시끌하자 아버지는 옆집 사람과 불침번을 섰습니다. 우리 집은 무사했습니다.

(지진」「2 이와부치심상소학교 아동작문집 - 진재호19242[토미타 슌사쿠씨 소장] -> 키타구사 편찬조사회편키타구사 <자료편> 현대1키타구, 1995)

성명불상 [5일 하코다테에 입항한 진재 피해를 입은 와세다대학생]

먼 옛날 이야기 아라카와강의 참수형

가와구치에서 기관차 아래 숨어있던 조선인(센진)이 발각된 일이 있었다. 또 아라카와 제방에 참수된 목이 걸려 있었고, 불령 센진(조선인)의 목이 죽창 끝에 높이 달려 보였습니다. 시체의 악취, 피자국으로 처참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하코다테 신문192396)

이바라키 신문 (192397)

아카바네 화약고를 노린 괴 조선인의 사체

화약고 부근은 착검한 병사 여럿이 지키고 있지만, 거기서 40미터(20) 쯤 떨어진 곳에서 한 조선인이 누군가의 칼에 베어 신음하고 있었지만 아무도 개의치 않았다.

 

간토학살사건은 유언비어를 사실화하여 계엄령을 발포함으로 대량학살이 자행되게 되었고, 정부에 의해 조선인에 관한 유언비어에 현혹되지 말고 자중하라는 대국민성명을 발표했고,
또 일본정부는 각 경찰서 등에 조선인이 방화, 폭동, 살인, 강간 등의 유언비어를 사실화하도록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기록에 의하면 조선인들이 매우 계획적으로 체계적인 반란을 꾀하고 사회적 불안을 야기하며 일본의 국가체제를 흔드는 불령한 존재로 만들고 있었지만, 사실 진짜 불령한 주체는 바로 일본 정부였음은 후대의 증언과 조사기록을 통해 낱낱히 드러나고 있다. 

이것을 한국시민들에게 알려야 하는 일이 운명처럼 이 일을 받아 든 사람들의 몫이 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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