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젤렌스키에 돌 던질 자격 있나”...진주만 공격 때 민간인 대거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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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젤렌스키에 돌 던질 자격 있나”...진주만 공격 때 민간인 대거 사망
  • 서울신문 김태균 기자
  • 승인 2022.03.21 12: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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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 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로이터통신과 인터뷰하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 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로이터통신과 인터뷰하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 16일 미국 연방의회 화상 연설에서 러시아의 자국 침공을 일본의 진주만 공격에 빗대어 언급한 데 대해 일본내 보수 진영을 중심으로 거센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젤렌스키와 우크라이나를 더 이상 동정하지 않겠다” 등 대놓고 혐오감을 드러내는 사람들까지 나오고 있다. 유명 개그맨 마쓰모토 히토시는 20일 TV에 나와 “(젤렌스키 대통령이) 진주만 공격을 갖다붙인 것은 영 거슬린다. 일본인으로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미국의 지지와 지원을 호소하면서 “1941년 12월 7일 당신을 공격하는 항공기로 하늘이 새까맣게 물들었던 끔찍한 아침 진주만을 기억하라”고 말했다. 동시에 2001년 알카에다에 의한 미 중심부 공격인 9·11테러도 언급했다.

일본 측 불만의 요지는 ‘9·11은 세계무역센터 등을 겨냥한 민간인 테러이지만, 진주만 공격은 군사시설을 겨냥한 것으로 성격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일본의 국민정서 근저에 자리한 ‘태평양전쟁 책임 불감증’이 여실히 드러났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가운데 반발의 근거가 되는 팩트 자체도 틀렸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뉴스위크 일본판은 지난 19일 ‘젤렌스키의 진주만 공격 언급으로 우크라이나 지지를 철회하는 사람들의 착각’이라는 기사에서 이를 심도 있게 다뤘다.

서울신문

야스쿠니 신사 어김없이 등장한 전범기 -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태평양전쟁 패전 75주년인 15일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에 또 공물을 바쳤다. 이날 야스쿠니 신사를 찾은 참배객 중 한 남성이 전범기를 몸에 두르고 있다. 2020.8.15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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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위크는 “진주만은 군사시설만을 표적으로 한 것이었기 때문 9·11과 동급으로 비교해서는 안된다는 것은 국제적으로도 극히 소수의 견해에 불과하다”며 “일반적으로 (피해 당사국인) 미국은 9·11과 진주만 공격을 같은 종류의 본토 기습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에서 태평양전쟁의 막을 올린 진주만 공격과 태평양전쟁의 막을 내린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는 ‘가해’와 ‘피해’의 대비되는 개념으로 인식되고 있다.

자국의 진주만 공격이 미 태평양함대와 기지 등 ‘군사적 목표에 대한 공격’이었던 반면 미국의 히로시마 등 원폭 투하는 무고한 인명을 25만명 이상 몰살한 ‘민간인에 대한 공격’이라는 정서다.

이에 대해 평론가 후루야 쓰네히라는 “진주만 공격이 애초 군사시설만을 노린 공격이었다는 것이 사실이라 해도 일본군의 인도적 배려라기보다는 민간시설을 폭격해도 얻을 수 있는 군사적 이득이 없었기 때문일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군사목표를 겨냥하지 않았다고 해도) 당시 미국 민간인 68명이 사망하고 35명이 부상했다”며 결과적으로 진주만 공격이 민간인에 피해를 주지 않았다는 주장은 팩트가 잘못된 것이라고 했다.

“민간인 사상자 가운데는 당시 미군의 오발이나 대공포 파편 낙하로 숨진 사람도 포함되지만, 이는 일본군의 공격이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기 때문에 공격을 정당화하는 소재로 삼아서는 안된다.”

서울신문

광복절 日야스쿠니신사…태평양전쟁 당시 전투기 - 15일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인 도쿄(東京) 지요다(千代田)구의 야스쿠니(靖國)신사 내부의 전쟁박물관 유슈칸(遊就館). 일명 ‘제로센(?戰)’으로 불리는 태평양 전쟁 당시 전투기가 자랑스럽게 전시돼 있다. 야스쿠니신사는 태평양전쟁 A급 전범 14명을 포함해 246만6천여명이 합사된 제국주의 일본의 상징이다. 2018.8.15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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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진주만 공격이 ‘군사시설만을 겨냥한 신사적 공격’이었다는 인식은 ‘그 전쟁은 옳았던 것이다’라는 수정주의 역사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은 대부분 전장에서 가공할만한 무차별 폭격으로 악명을 떨쳤다. 중일전쟁 때 중국 충칭 등 인구 밀집 대도시를 초토화시키는 등 도심, 군사시설에 상관없이 무차별 파괴를 자행하는 ‘전략폭격’의 원조로 불렸을 정도다.

후루야 평론가는 “만일 중국과 북한이 자위대 기지를 선제공격해 자위대원 약 2300명(진주만 기습으로 숨진 미군)과 민간인 68명이 숨졌을 때 과연 일본이 ‘군사시설만 겨냥한 신사적인 공격’으로 간주할 것인가”라며 “이런 상황에도 분노하지 않을 사람만이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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