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덕상, 간토 조선인학살은 ‘한일전쟁’ 연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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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덕상, 간토 조선인학살은 ‘한일전쟁’ 연장선
  • 김치관 통일뉴스기자
  • 승인 2020.01.31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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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의 위험성으로부터 시작해서 차별, 편견, 유언비어를 내보내고 학살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침략과 저항이 낳은 민족대결의 산물이다. 이것이 내 결론이다. "
▲ ‘1923한일재일시민연대’가 주최한 간토학습회가 20일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교육원에서 열렸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1923한일재일시민연대’가 주최한 간토학습회가 20일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교육원에서 열렸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1923년 9월 1일 일본 간토(関東) 대지진 당시 6천여 명의 재일동포들이 학살당한 지 90주기를 맞아 2013년 6월 19일 국회 토론회에 이어 ‘1923한일재일시민연대’가 주최하고 ‘간토제노사이드희생자 90주기 추도행사 준비위원회’가 주관한 간토학습회가 20일 오후 서울 서대문 소재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교육원에서 열렸다.

일찍이 1960년대부터 간토 대지진(대진재) 당시 조선인 학살사건을 연구해온 강덕상(81세) 시가(滋賀)현립대학 명예교수는 일본이 조선의 국권을 빼앗고 이에 대해 저항하는 100년에 걸친 ‘적대관계’의 연속선상에서 간토 조선인학살을 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덕상 명예교수는 간토 대진재의 본질인 한일 간의 민족대결, 적대관계가 1994년 청일전쟁으로부터 1919년 3.1운동까지 이어졌고 1923년 간토 조선인학살로 나타났으며,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고 역사적 사실들을 들어 설명했다.

먼저 1894년에 청일전쟁에 대해 “일본에서는 일본과 청국과의 전쟁이라고 생각했지만 우리는 이것은 일본군과 갑오농민군과의 대전쟁이었다”며 “역사적으로는 제1차 한일전쟁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일본에 대해 죄없는 농민군의 대살륙을 감행했다”는 것이다.

이후 10년 후인 1904년 러일전쟁 역시 “일본에서는 일본과 러시아의 전쟁이고 일본이 이겼다고 이야기 하지만 일본이 이겼다는 것은 한국을 식민지로 만들었다는 뜻”이라며, 이후 의병전쟁(1906~1911년)으로 이어졌다고 해석했다.

 

   
▲ 강덕상 재일한인역사자료관 관장이 주제강연을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특히 의병전쟁에서 일본군은 전사자 136명, 부상자 229명이지만 의병은 전사 1만 7,779명, 부상 3,706명이라며 보통 전쟁과 달리 부상자보다 전사자가 훨씬 많은 이유에 대해 “투항하고 저항하지 않는 사람들을 죽였다는 이야기”라며 “이것이 침략의 과정에서 볼 수 있는 일본군의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이같은 흐름에서 식민지화가 진행되고 3.1운동이 진압당한 뒤 간토 대지진이 발생하자 3.1운동을 진압했던 일본 현병 간부들이 그대로 재일 조선인들에 대한 집단 학살을 자행했다는 것이다.

강덕상 명예교수는 간토 조선인학살과 관련 “나는 ‘관헌 주도설’을 일관되게 주장했다”며 “계엄령이 없었으면 학살이 없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간토 조선인학살은 계엄령 하에서 경찰과 군대가 주도해 이루어졌다는 결론이다.

계엄령 하에서 군인이나 자경단원들이 탁음이 많이 들어간 ‘쥬고엔 고짓센(十五円五十錢)’을 발음해보라고 해서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면 ‘죠센징’(조선인)으로 간주해 살육한 사실은 “‘적(敵)은 조선인’이라는 인식을 갖고 출동한 계엄군의 지휘 아래, 일본 관민은 조선인을 적으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발생했다는 것.

그는 이같은 논지를 입증하기 위해 ‘간토 계엄사령부 상보’ 등 공문서들을 찾아냈고, 수많은 증언들을 청취, 기록해 『간토대진재 -학살의 기억』(2003)을 발간하기도 했다.

이날 학습회에는 도쿄 스미다구에서의 학살을 조사한 니시자키 마사오 씨와 요코하마에서의 학살을 조사한 야마코토 스미코 씨, 치바현에서의 학살을 조사한 히라카타 치에코 씨가 사례발표에 나섰다.

 

   
▲ 니시자키 마사오 씨가 도쿄 스미다구에서 발생한 조선인 집단학살 사건에 대해 설명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니시자키 마사오 씨는 대학생이던 23살 때 도쿄 스미다구에서 발생한 조선인 집단학살 사건을 알게 돼 추모비 옆에 살면서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9월 1일 대지진이 발생해 도쿄에서는 화재가 많이 발생했고, 육군피복장 터에서는 공터에 도망간 3만 8천여명이 불에 타 죽었고, 살아남은 피난민들은 ‘조선인이 방화했다’, ‘우물에 독약을 넣었다’는 유언비어가 나돈 뒤 지진 당일 밤부터 집단학살 당했다. 더구나 2,3일 후에는 치바현에서 군대가 와서 기관총으로 며칠간 조선인을 학살했다.

60년 가까이 지나서야 어느 초등학교 교사가 우연히 학살사건을 알게 되어 1982년 ‘간토대진재 시 학살당한 조선인의 유골을 발굴하고 추모하는 모임’이 발족돼 추도식을 거행하고 증언과 사료를 집적하는 한편 일본 당국의 방해를 무릅쓰고 사건 현장의 사유지를 매입해 추도비를 건립했다.

니시자키 마사오 씨는 “증언을 직접 들은 제가 다음세대를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추도비의 유지관리 등을 “일본 정부와 한국 정부가 참여하는 형식으로 어떻게든지 만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요코하마의 경우 “요코스카에 와보니까 그 부근의 도쿄만에는 살해된 조선인의 시체가 많이 떠 있었고, 그 시체 위를 걸어서 건너갈 수 있을 많은 많은 조선인이 학살되었다”는 증언이 있고, 9월 2일부터 이미 조선인(鮮人)이라면 즉시 죽여도 된다는 관청의 명령이 통달됐다는 구체적 증언들도 확보했다. 특히 재향군인회를 중심으로 경찰의 지원을 받고 자경단이 구성돼 경찰과 함께 조선인을 집단살해 하는데 앞장섰고, 중국인 학살도 자행됐다.

치바현의 경우 육군나라시노수용소가 자경단에 조선인을 넘겨 학살하게 한 사건에 대해 “군대가 시켰다는 사실의 경과와 군대의 책임에 대해서 위령비 이면에 새기기를” 원했지만 결국 마을 사람들의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해 1999년 건립한 ‘간토대진재 조선인희생자 위령의 비’에 이 사실을 써넣지 못했다.

 

   
▲ 참가자들은 4시간이 넘게 학습회가 진행되는 동안 진지한 관심을 보였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강덕상 명예교수는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딸이 도쿄로 이사와 4층짜리 집을 지으려했지만 주변사람들이 반대해 짓지 못한 사례나 자신의 집앞 길에 오토바이를 삐딱하게 주차한 이웃에게 시정을 요구하자 팔순이 넘은 그에게 “시끄럽다. 입닥쳐라. 조센징!”이라고 욕설을 퍼부은 사례를 들며 현재 일본 사회에 만연한 불만이 가장 사회적으로 취약한 조선인과 중국인에게 퍼부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최근 일본에서 ‘한국인은 모조리 죽여라’라든지, ‘나쁜 조선인 한국인 상관없이 모조리 죽여라’라는 시위가 있지만 시위대를 경관이 보호하고 있다”며 “특히 동일본 대지진 그것을 계기로 강화되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학습회 사회를 맡은 ‘1923한일재일시민연대’ 상임대표 김종수 목사는 “6천여 명의 희생자 실명과 주소가 명확히 공개됐는데 유족이 연결 안 되고 있다”며 “하루빨리 유족을 찾아 소송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날 국회토론회에서는 ‘1923 간토 조선인 학살 진상 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추진키로 논의됐으며, ‘1923한일재일시민연대’는 7월 2일부터 직접 학살현장 조사에 나설 예정이다.

 

   
▲ 간토학습회를 마치고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김종수 목사는 “일본 정부는 90년 동안 학살사실을 철저히 은폐하고 사실을 왜곡해옴으로써 재일 한국(조선)인에 대한 학살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한국 정부가 단 한 차례도 국가차원의 진상조사를 하지 않은 채 90년을 지나왔다는 것은 억울하게 희생된 재일동포들에게 국가는 무책임과 무능력한 조국일 뿐이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나아가 “문제는 지금도 여전히 자신들의 잘못을 시인하지 아니하고 역사를 왜곡하고 있으며, 더 큰 문제는 여전히 지금도 재일코리안에 대한 무차별 제노사이드(집단학살)가 가해지고 있다”고 짚었다.

이날 학습회에는 일본에서 온 정종석 ‘1923한일재일시민연대’ 재일대표 등 일본측 관계자들과 학살현장 조사에 나설 김경호 들꽃향린교회 담임목사, 대안학교학생들 모두 40여명이 참석했다.
( 2013.06.23  01:16:07 통일뉴스 게재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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