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년만의 두번째 관동대지진 유족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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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년만의 두번째 관동대지진 유족 확인
  • 통일뉴스 이승헌 기자
  • 승인 2015.07.19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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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살 큰아버지(김광진) 신원한 84살 조카(고 김대원)

생계가 무척 어려운 시절이었다. 한 동네에 사는 가까운 친척이기도 했던 결혼 직후의 젊은 청년 5명이 돈을 벌기위해 일본 도쿄의 아사쿠사의 군복만드는 공장으로 길을 떠났다.

그러나 고향으로 돌아온 건 한 사람뿐. 나머지 네 명은 낯선 이국땅에서 불귀의 객이 된 채 91년의 세월이 흘렀다.

31살의 김광진 씨도 1923년 9월 1일 오후 8시 일본 도쿄 일대에서 발생한 관동대지진 이후 일본 군인과 경찰, 민간인 자경단에 의해 자행된 잔인한 살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고향(전라남도 무안군 안좌면 원산리, 당시)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제적부에는 김광진 씨가 "대정11년(12년의 오기로 보임, 1923년) 9월 1일 오후 8시 東京市 淺草區 芝野町 3번지"에서 사망한 것으로 기록돼 있고 집에서도 음력 7월21일이면 제사를 지냈다. 당연히 고향 마을에는 김 씨 외에도 같은 날 제사를 지내는 분들이 3명 더 있었다.

그러나 김광진 씨가 관동대학살의 희생자라는 사실을 확신했던 사람은 지난해 11월 전까지는 조카인 고 김대원(2013년 작고, 84) 씨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지난해 11월 정보공개청구에 따라 국가기록원이 재일 한국대사관의 이전 과정 중에 발견된 관동대지진 당시 희생자 명단을 일부 공개했는데, 여기에 김광진 씨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 지난해 11월 정보공개청구에 따라 국가기록원이 공개한 그해 1월 재일 한국대사관의 이전 과정 중에 발견된 관동대지진 당시 희생자 명단. 빨간 테두리 부분이 김광진 씨 인적사항이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1923한일재일시민연대'의 상임대표를 맡고 있는 김종수 목사와 김대원 씨의 며느리 한정덕(55) 씨를 26일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위한 추진위원회'이 열리는 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만났다.

지난해 작고한 시아버지가 큰아버지의 신원을 위해 30여년을 몸에 붙이고 동분서주하던 두툼한 서류 뭉치는 김 목사의 인도로 며느리의 손을 거쳐 세상에 드러났다.

김대원 씨가 김동우, 김길완, 김연성 씨 등과 함께 연서명으로 작성한 '피해자 조사' 요청 호소문은 1998년 3월 26일자, 당시 김대중 대통령에게 전달된 것이었다.

며느리 한 씨는 "돌아가신 시증조할머니는 시아버지(김대원)를 항상 '대완'이라고 불렀다"고 말했다.

한 씨는 일본에서 돌아오지 못한 자신의 큰아들을 대신해 손자가 세상에 났다는 뜻으로 시증조할머니가 그렇게 하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큰 아버지(김광진)와 운명으로 맺어진 김대원 씨는 지난 1980년대부터 거의 매년 도쿄 아사쿠사 등을 다니며 진실을 밝히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해 왔지만 별 소득을 얻지 못하고 지난해 지병으로 떠났다.

그러나 이번 국가기록원 명단 공개와 가족들의 기록이 확인되면서 관동대지진 희생자로 가족의 신원을 하려했던 평생의 집념이 빛을 발하게 된 것이다.

   
▲ 김광진 씨 제적부 내용. 오른쪽은 빨간 테두리안을 확대한 사진. 국가기록원이 공개한 명단의 세부 내용과 일치한다.[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김 목사는 관동대지진 당시 카메이도 경찰서에서 일본 군인에 의해 임산부와 태아를 포함해 잔인하게 학살된 가족(제주도 대정읍 인성리-조묘송, 문무연, 조태석, 조정소, 조정화)의 유족이 확인된 이후 김대원 씨가 두 번째 유족 확인 사례가 된다고 설명했다.

김 목사는 제주도 인성리 유족들의 경우에도 지난해 1월 재일 한국대사관에서 명단이 발견된 사실이 회자되면서 노인들이 개인적으로 일본에 가서 사실을 파악한 후 그전 족보에 기록으로 남겨놓았던 내용과 일치한다는 것이 확인됨으로써 최종적으로 유족 확인이 된 것이라고 부연했다.

김 목사는 이어서 "너무 오래된 일이고 당시 국내와 일본에서 실종자 확인 등을 위한 조사작업에 나선 유학생들이 구술로 확인한 명단이어서 오·탈자가 많아 여전히 유족확인까지는 어려움이 많이 남아있다"며, 국회의 특별법 제정이 완료되면 정부가 적극 나서서 확인 작업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 희생자인 김광진 씨의 조카인 고 김대원 씨는 지난 1980년대부터 호소문과 일본 현지 방문 등 진실 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 숱한 노고를 겪어야 했다. '관동대지진 특별법 추진위원회'는 국회에 발의된 관련 특별법 제정이 완료되면 이제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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