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학살 희생자를 위한 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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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학살 희생자를 위한 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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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7.01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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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지 못한 조사와 추도

식민지 조선과 일본에 있던 조선인들은 학살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였습니다. 지진 이 일어난 직후 조선에서는 ‘동경지방이재조선인구제회’가 조직되어 피해지역에 있는 조선인을 구제 하고 진상을 조사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10월에는 ‘관동지방이재조선동포위문반’이 조직되어 구제 와 위문사업을 벌이는 한편, 학살의 진상을 조사했습니다. 상해의 『독립신문』에서도 조사활동을 벌였 습니다. 그렇지만 학살의 사실을 조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항상 일본 경관의 감시가 따 라붙었고, 학살을 목격한 일본인들도 침묵으로 일관했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조 사활동을 통해 약 6천여 명의 조선인이 학살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소식도 모른 채 유골도 돌아오지 않았다 

전남 신안이 고향인 김광진(金光振)은 조선인학살사건의 희생자였습니다. 학살의 현장에서 간신히 살 아 돌아온 친척들에 따르면 김광진을 비롯한 다수의 같은 마을 조선인들이 아사쿠사에서 학살되었고, 살아 돌아온 사람들의 증언을 족보에 기록해 두었습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이 사건의 조사결과를 발표한 일도 없고, 유족들에게 배상조치를 취한 일도 없었 습니다. 김광진의 유족인 김대원님은 학살 희생자의 유족임을 밝히며 한국 정부의 조사를 요청해 왔으 나, 번번이 거절되었습니다. 2013년 11월 발표된 「관동조선인학살희생자명부」에 ‘김광진(金光振)’이라 는 이름이 적혀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김대원님이 사망한 후였습니다.

 

매년 열리는 학살 희생자 추도

일본 관동(関東)지역에서는 매년 학살된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집회가 곳곳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특 히 재일동포들은 8월 말에서 9월 첫 주간이 되면, 관동 전역의 학살현장과 추도비를 찾아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추도행사를 해 왔습니다. 사이타마 현 오오미야(大宮)에는 죽창과 일본도로 학살당한 강대흥(姜大興)의 묘가 있고, 요리이(寄居)경찰서에서 자경단에 습격을 받아 사망한 구학영(具學永, 당시 28세)의 비석에는 ‘조선 경남 울산군 상면 산전리’라는 주소도 남아 있습니다. 매년 이들의 죽음을 추모 하는 행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한편, 학살된 조선인의 사체를 땅에 묻었다는 증언이 있었던 도쿄 아 라가와(荒川) 강가에서도 진상규명을 위해 애써 온 일본·재일활동가들에 의해 해마다 추도회가 열리 고 있습니다. 이들은 학살의 사실과 주체를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는 추도비를 시민의 성금으로 제작하 였고, 주변에 재일조선인을 상징하는 봉선화를 심어 그 씨앗을 나누며 학살의 기억을 잊지 말 것을 다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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