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타마, 군마 및 치바 등지에서의 학살의 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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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타마, 군마 및 치바 등지에서의 학살의 양태
  • 김강산
  • 승인 2015.07.01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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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타마(埼玉)에서는 자경단 조직을 명령

사이타마현 내무부장 고사카 마사야스는 도쿄에서 불령선인(不逞鮮人)의 맹동(盲動)1) 있으니 현내 각 행정구역 당국자들은 ‘유사시 적당한 방책을 취하도록 하라’는 내용을 전화로 전달하였습니다. 그리고 이튿날부터 현 내 각 지역에서 자경단이 결성되었습니다. 경찰은 지진의 직접적인 피해를 받지 않았던 군마현으로 도쿄. 요코하마 지역에 있던 조선인을 검속(檢 束)2)하여 보냈습니다. 때문에 사이타마 남쪽으로부터 나카센도(中線道)를 통해 조선인을 포함한 피난민 들이 속속들이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조선인들이 사이타마 북쪽에 도착한 4일 밤을 중심으로 자경단과 군중들에 의한 습격이 발생했습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군대의 힘으로 습격을 막아야 할 정도였습니다. 이러한 습격으로 구마가야(熊谷)57명, 혼죠(本庄) 88명, 진보바라(神保原)에서 42명... 총 200여 명에 달하는 조선인이 희생당했습니다.

 

군마(群馬)에서는 신문이 유언비어를 확산

군마현에서는 도쿄 방면에서 오는 피난민들을 통해 ‘불령선인(不逞鮮人)이 불을 지르고 폭탄을 던졌 다’는 등의 유언비어가 퍼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문은 유언비어를 확인하지도 않고 그대로 보도했 습니다. 5일, 인근의 일본인 약 2천 명이 후지오카(藤岡)경찰서를 습격했습니다. 후지오카 경찰서에서는 조선인들을 ‘보호’라는 명목으로 구류하고 있었습니다. 조선인들은 습격에 저항하지 못하고 죽창과 일 본도 등으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군마현 경찰은 37명을 가해자로 검거했지만, 지방법원, 항소원, 대법원으로 심리가 진행되어 가는 과 정에서 실형을 선고 받은 사람은 단 2명(징역 3년)에 그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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