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한 권력의 두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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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한 권력의 두려움
  • 김종수
  • 승인 2018.09.06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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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토학살희생자 제95주기 추모를 위한 1923역사기행

간토학살희생자 제95주기 한국 추모기행단 개회설교

불의한 권력의 두려움

 

김종수 목사

1923한일재일시민연대 대표

한국기독교장로회 교회와사회위원회 간토진상규명소위원회 위원장

출애굽기 1장 7절 ~ 10절

이스라엘 백성은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온 땅에 가득 찰 만큼 무섭게 불어났다.

그런데 요셉의 사적을 모르는 왕이 새로 이집트의 왕이 되어

자기 백성에게 이렇게 일렀다. "보아라, 이스라엘 백성이 이렇듯 무섭게 불어나니 큰일이다.

그들이 더 불어나지 못하게 기회를 보아 손을 써야겠다. 전쟁이라도 일어나면 원수의 편에 붙어 우리를 치고 나라를 빼앗을지도 모른다.“

마태복음 2장 16

헤로데는 박사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 몹시 노하였다. 그래서 사람을 보내어 박사들에게 알아본 때를 대중하여 베들레헴과 그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를 모조리 죽여버렸다.

안녕하십니까?

태풍 때문에 못 만날까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태풍이 지나갈 때는 피해가 참으로 큽니다. 뉴스에 나오면 모두들 걱정합니다. 태풍이 멀리 떠나가면 큰 피해를 보지 않은 사람들은 안심을 하고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태풍으로 인해 큰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태풍으로 이해 피해를 입은 상처가 아물 때까지 큰 고통을 받습니다. 피해를 복구하지도 못했는데 또 다시 태풍이 온다고 하면 오기 전부터 태풍 트라우마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는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게 됩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인생의 태풍과 그로인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저는 문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각자의 인생은 큰 바람(颱風)이고, 오늘 하루는 그 태풍의 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존경하는 성경의 두 지도자인 모세와 예수는 온 가족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커가야 할 탄생에서 유아기까지 학살의 광풍 가운데에서 태풍의 눈에서 살아남았습니다. 이집트제국의 새 파라오는 기후변화를 예측한 요셉의 훌륭한 경제정책에 대한 고마움도 잊고, 가혹한 육체노동까지 살기 위해 마다하지 않았던 히브리인들의 노동에 대한 든든함을 오히려 불안해하였습니다. 심지어 힘든 하루를 이겨내고 사랑이 넘치는 가정생활로 점점 가족들의 수가 늘어가는 것까지 두려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고민은 저들의 힘이 점점 세어지니 전쟁이라도 일어나면 원수의 편에 붙어 우리를 치고 나라를 빼앗을지도 모른다는 염려였습니다. 그래서 그 싹을 자르기 위해 여자아이는 남겨두고 사내아이들을 찾아 무조건 강물에 빠뜨려 죽였습니다. 모세는 이집트의 권력의 한복판에 공주의 품을 태풍의 눈으로 삼고 살아남았습니다.

예수님도 역시 제국의 권력에 기생하던 헤롯에 의해 학살의 광풍을 맞이했습니다. 이제 곧 태어날 아기에게서 신비한 기운을 느끼며 멀리서 별을 보고 찾아왔다는 점성가의 예언에 듣게된 헤롯은 극도로 예민해졌습니다. 이제 갓 태어난 아기가 새 왕이 될 것이라는 점성가의 말에 천년만년 권력을 놓치고 싶어했는지 헤로데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를 모두 학살을 해 버렸습니다. 로마제국의 꼭두각시인 헤롯의 권력욕으로 수많은 아이들이 학살되고 예수님은 살아남았습니다.

왜 권력자들은 평범한 보통사람들이 당연히 누려야 할 행복추구권까지도 자기 마음대로 빼앗지 못하면 불안해하는 것일까요? 모세와 예수는 권력의 광풍 한 가운데에서 태풍의 눈 속에서 살아남으셨고, 마침내 위대한 지도자가 되셨습니다.

95년 전의 오늘로 돌아갑니다.

일제의 식민지가 되어 땅을 빼앗겼습니다. 그래서 일자리를 찾아 간토지방으로 이주노동자가 되었습니다. 일본의 노동자들이 임금투쟁을 하는 사이, 그 빈자리를 누군가를 채워야 했습니다. 일본제국은 조선인들의 입국요건을 쉽게 만들었습니다. 너도나도 일본으로 돈벌자고 들어갔습니다. 일본의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일자리를 차지하는 조선인들과 중국인들을 좋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유가 학살의 원인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조선노동자들의 일본노동자들의 권익투쟁에 누구보다 더 용감하게 일제의 공권력에 맞대응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시기의 눈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있었지만, 어떤 이들은 조선인을 연대하는 동지로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연대는 생각보다 활발했습니다. 일본과 조선의 지식인들은 군국주의보다는 군대와 전쟁을 거부하는 아나키즘에 더 많은 매력을 느꼈습니다. 해마다 메이데이에는 노동자들의 연대가 점점 더 강고해졌습니다. 일본의 부락민들은 수평사운동을 전개하며 인권선언을 하였고, 이러한 운동은 조선에도 전해져 백정들의 형평사운동으로 신분해방운동으로 화답했습니다. 일본의 권력은 이러한 연대가 두려웠습니다.

간토대지진이 일어나기 전에 있었던 일본 민중들의 쌀투쟁, 그리고 우리가 예배드리는 이 곳에서 99년 전 2,8독립선언, 그리고 기 독립의 열망이 식민지조선으로 이어져 총칼로도 진압하지 못했던 한반도 전역의 3.1만세운동의 열기는 일본을 매우 두렵게 만들었습니다.

일본에서의 근대화를 가장한 봉건황조의 타도를 모색하던 사회개혁세력들, 그리고 조선의 독립운동의 강화와 심지어 일본의 개혁세력들과 점점 더 강해지는 연대가 일본제국주의 권력은 매우 불안한 시기였던 것입니다.

결국 간토대지진이라는 자연재해가 일어나자마자 몇 시간도 안 되어 계엄령이란 카드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명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시중에 나도는 유언비어를 확대재생산해 냄으로써 외국인에 대한 혐오를 불질러 일본민중과 조선민중을 분리시켰습니다. 산업시설을 폭파하고 떼강도가 출몰한다고 하면서 지역유지들에게 자기재산을 지킬 자경단 조직을 서두르게 하였습니다. 우물에 독약을 넣고 있다며 마을공동체를 파괴한다고 하면서 지역주민들을 자경단에 가입하도록 부추겼습니다. 혼란에 빠진 가정집에 습격하여 강간을 일삼는 가정파괴범으로 몰아세워 혐오감을 극대화시켰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거짓뉴스는 우매한 민중들을 속이는 무기가 되어 왔습니다. 그 유언비어를 퍼뜨려 권력자들이 원하는 상황을 만들어내고 조선인에 대한 극도의 경계심과 혐오감을 극대화시킨 뒤 권력자들이 취한 다음 조치는 계엄령이었습니다. 유언비어로 광란의 상태가 된 민중들에게 계엄령을 선물하여 조선인학살을 합법적이고 애국적인 행동으로 여기게 만들어 불과 사나흘 만에 6천여 명의 학살이 자행되었던 것입니다.

학살을 직접 보았던 외국인들의 증언은 전 세계로 퍼져갔고, 긴급원조를 하려던 나라들도 이 학살사건에 대해 일본정부에 묻기 시작했습니다. 당황한 일본정부는 계엄령의 원인이 되었던 거짓뉴스를 실제 일어난 일로 만들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평소보다 강도, 강간사건의 빈도는 훨씬 낮았습니다. 거짓을 사실로 만드는데 실패한 일본 정부는 유언비어에 현혹되지 말라고 자경단을 진정시키려 했습니다. 그러나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수용소에 갇혀있던 조선인들을 밤마다 대 여섯명씩 수용소 밖에 있는 자경단들에게 내보냈습니다. 알아서 죽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일본정부는 조선인 일꾼을 모아 지진으로 목숨을 잃은 일본인들과 학살된 조선인들을 한데 섞어 기름을 붓고 태워버렸습니다. 증거를 없애려고 동포들의 시신을 태워버리는 일을 ‘같은 조선인노동자들’에게 시킨 것입니다.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지만, 조선에 있는 가족들에게 자신이 죽었음을 알릴 방법은 간신히 살아서 돌아간 생존자들의 증언이 전부였습니다. 무덤에 묻히지도 못한 조선인들이 대부분이었으니 꽃도 없고 십자가도 없었습니다.

해마다 추도식에 조선인들이 모여들면 해산명령을 내렸습니다. 그 후로 일본 내의 조선인들은 그야말로 이원수님의 표현대로 낮에 나온 반달처럼 일장기의 붉은 해가 쓰다버린 쪽박신세가 되었고, 조선인들이 술해 취해 부르는 ‘울밑에선 봉선화’는 땅 속 깊이 묻혀진 억울한 영혼들의 위령가가 되었습니다.

일본의 공권력이 진실을 숨기려 했지만 추도활동과 조사활동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모든 공적인 자료는 은폐하였으나 90여 년간 연구자들과 민간조사활동가들은 조각조각의 자료들을 모아 진실의 퍼즐을 맞혀 왔습니다. 2003년 재일동포 문무선의 호소로 조사를 한 일본변호사연합회는 고이즈미 총리에게 다음과 같이 권고하였습니다.

1. 국가는 관동 대지진 직후의 조선인, 중국인에게 대한 학살 사건에 관하여, 군대에 의한 학살의 피해자, 유족,및 허위사실의 전달등 국가의 행위에 유발된 자경단에 의한 학살의 피해자, 유족에 대하여, 그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해야 한다。

2. 국가는 조선인, 중국인학살의 전모와 진상을 조사하고, 그 원인을 밝혀야 한다.

그러나 일본의 공권력은 지금도 증거가 없기에 사과도 유감표명도 할 의향이 없다고 말합니다. 일본 정부가 이런 입장이기 때문에 도쿄도지사로서 조선인 희생자들을 추도하는 모임에 추도사를 보낼 일이 없다고 합니다. 참으로 후안무치하고 몰염치하고 반역사적인 권력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의 축인 불의한 국가권력의 학살 속에서 모세와 예수를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요 인류의 구원자로 만드셨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뜻이라면 우리민족이 당한 고난의 한 가운데서 조용히 태풍의 눈 한가운데에 있는 재일동포 중에서 그 누군가를 하나님 나라의 주역으로 만들고 계실 것이라 우리는 믿습니다.

간토학살 95년을 맞아 우리는 무엇을 기억해야 합니까? ‘꽃도 없고, 이름도 없고 무덤도 없는 6천 여 재일동포들의 영령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를 스스로에게 묻고 스스로 대답을 찾으라는 것이 오늘 우리들에게 던져주시는 주님의 메시지일 것입니다.

깨어있기에 주님의 뜻을 묻고, 예수의 마음을 품었기에 묵묵히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고난 속에 희망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아멘

 

김종수 (한국기독교장로회 교회화사회위원회 간토진상규명소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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