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U 엽서로 발행한 간토대진재 당시 피재자와 피학살자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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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U 엽서로 발행한 간토대진재 당시 피재자와 피학살자의 사진
  • 미디어기평 기자
  • 승인 2024.07.22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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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7차 간토학살 증언 읽기 및 번역모임
UNION POSTALE UNIVERSELLE (UPU-1874년 설립된 국제기구로서, 국제우편연합의 전신)가 발행한 우편엽서
포스터 안의 사진은 UNION POSTALE UNIVERSELLE (UPU-1874년 설립된 국제우편연합의 전신)가 발행한 우편엽서이다.

127차 포스터에는 한 우편엽서의 뒷면을 담았다. 이 우편엽서는 1874년에 설립된 UPU(국제우편연합-UNION POSTALE UNIVERSELLE)가 발행한 엽서이고, 포스터에 인쇄된 엽서의 제작은 1923간토대학살의 피재자(被災者)와 피학살자(被虐殺者)의 사진이 인쇄되어 있다. 
피재자의 모습만으로도 재난의 피해정도와 고통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그런데 그 사진들 중에는 피학살 조선인들의 사진들이 섞여 있었다. 이 끔찍한 모습들을 일본 국제우편연합이 발행한 이유는 무엇일까? 추측해본다면 대지진으로 인한 파괴와 피해를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사용되었을 것이고, 일본 제도(帝都-도쿄)의 부흥을 위한 캠페인으로 발행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진과 화재로 인해 완전하게 무너진 도쿄, 요코하마 등의 건물들과 거리, 휘어진 철도 등의 모습만으로도 충분한 것을, 재난 당한 피재자들의 사체와 더우기 피학살자의 사진까지 엽서로 발행한 공공기관의 인권경시의 수준은 가히 처참하다고 말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일본 정부는 1923년 이후 단 한번도 조선인 학살의 국가책임을 인정한 일이 없다. 당시 의원들의 질의에도 '조사 중'이라는 말로 진실과 책임을 회피하였던 야마모토 곤베(山本権兵衛) 수상 재임기간에 발행된 이 엽서를 통해 이 사건을 대하는 일본 권력의 반인도적 행태는 권력의 악마성을 확인하게 된다. 

아래 글은 1923년 간토대학살 당시 우에노에 거주하던 물리학자 나카야 우키치로(中谷宇吉郎)의 증언이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유언비어를 유포한 자들은 일본 경시청의 순경이 말을 타고 골목골목을 다니며, 조선인들이 로쿠고가와를 사이에 두고 교전 중이라며 큰소리로 일본인들에게 전하고 다녔다는 증언이다. 증언자는 '전혀 근거없는 유언비어'였음을 밝히고 있다. 후에 언론들은 순경들이 전하는 내용(유언비어)을 사실로 보도하였고, 이러한 보도는 지금까지 조선인 내란의 근거로서 활용되고 있다. 
 

中谷宇吉郎〔物理学者。当时上野在住〕
流言蜚語の培養層を、無智な百姓女や労働者のような人々の間だけに求めるのは、大変な間違いである。関東大震災の時にも、今度と同じような経験をしたことがある。あの時にも不逞鮮人事件という不幸な流言があった。上野で焼け出された私たちの一家は、本郷の友人の家へ逃げた。大火が漸くおさまっても流言は絶えない。3日目かの朝、駒込の肴町の坂上へ出て見ると、道路は不安気な顔付をした人で一杯である。その間を警視庁の騎馬巡査が一人、人々を左右に散らしながら、遠くの坂下から馳け上って来た。そして坂上でちょっと馬を止めて
「唯今六郷川〔六郷橋付近の多摩川下流部〕を挟んで彼我交戦中であるが、何時あの線が破れるかもしれないから、皆さんその準備を願います」と大声で怒鳴ってまた馳けて行った。もう20年以上も前のことであるが、あの時の状景は今でもありありと思い浮うかべることが出来る。勿論全く根も葉もない流言であった。そんな馬鹿なはずはないと思われることは、どんな確からしい筋からの話でも、流言蜚語と思って先ず間違いはない。そういう場合に「そんな馬鹿なことがあるものか」と言い切る人がないことが、一番情ないことなのである。
(「流言蜚語」「読売報知」1945年!「中谷宇吉郎随筆集」岩波文庫、1988年)
 

나카야 우키치로(中谷宇吉郎)[물리학자. 당시 우에노 거주]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자들(培養層)을 무식한 백성・여자,노동자 같은 사람들로만 간주하는 것은 대단한 잘못된 일이다. 간토 대지진 때도 이번과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그때에도 불령 선인 사건이라는 불행한 유언비어가 있었다. 우에노(上野)에서 화재를 당한 우리 가족은 혼고(本鄕)의 친구 집으로 도망갔다. 큰 불이 마침내 가라앉아도 유언비어는 끊이지 않는다.사흘째 되는 날 아침, 고마고메 사카나쵸(肴町)의 언덕 위에 나와 보니, 도로가에는 불안한 표정을 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그 사이를 경시청 기마순경 한 명이 사람들을 좌우로 가르며 멀리 언덕 아래에서 달려왔다. 그리고 언덕 위에서 잠깐 말(馬)을 멈추고는“지금 로쿠고가와(六郷川)[로쿠고바시 부근 다마가와 하류부(六郷橋付近の多摩川下流部)]을 사이에 두고 적과 교전중인데, 언제 저 선이 돌파될지 모르니까 다들 준비해 주세요”라고 큰 소리로 외치며 다시 달려갔다. 벌써 20여 년 전의 일이지만 그때의 정경은 지금도 생생하다. 물론 전혀 근거 없는 유언비어였다
.그런 바보같은 일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믿을만한 소식통이라 해도, 그것은 유언비어라고 생각하는 것이 맞다. 그런 경우에 "그런 바보 같은 일이 어디 있겠느냐"고 단언하는 사람이 없는 것이 가장 한심한 일이다.
('유언비어', '요미우리 호치(読売報知)' 1945년! '나카야 우키치로 수필집' 이와나미 문고, 1988년)

천재지변을 수습하기 위한 방안으로서 있지도 않은 '적(敵-내란을 일으키고 있는자)'을 만들어 참변을 일으키고, 그 참변의 피해자들의 처참한 주검을 사진찍어 도쿄의 부흥을 위한 돈을 모으고자 했으며, 지금도 여전히 당시의 재일조선인들에 대해 각종 범죄자의 누명을 씌운 행태를 인정하지도 않고 수정하려고도 하지 않는 현재의 일본 국가권력의 정치인들 역시 1923년의 정치인들의 수준과 다르다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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