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역사로 일본이 무릎 꿇어야 한다는 생각 못 받아들인다"고 말한 尹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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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역사로 일본이 무릎 꿇어야 한다는 생각 못 받아들인다"고 말한 尹에게 묻는다.
  • 김종수 데스크
  • 승인 2023.05.09 17: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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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쿄지역에서의 간토학살증언 1100가지 학습 및 번역모임

"100년 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기는 하니?"

오랫동안 이 사료들을 찾아 모아 사비를 털어 자료집으로 만들고, 그러다 책으로 펴낸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참으로 고맙다.

간토학살의 진실을 규명해 온 주요지역(도쿄, 지바, 사이타마, 가나가와..)의 추도 및 조사위원회를 이끌고 있는 대표들의 직업이 모두 교사였다는 사실이 참 특이하다. 

이 분들은 교사로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고, 감추어진 역사를 찾아내는 일에 젊은 시절과 노년의 때를 다 보내고 있다. 100년 전의 일에 대한 일본 정부의 국가책임을 묻는 일을 한시도 거르지 않았으며, 그렇게 오롯이 한 길의 인생을 살아오셨다.  

그런데 尹!

무슨 자격으로, 또 무엇을 용서한다는 것인지 알기는 한 것인가?

아래는 봉선화회의 니시자키마사오이사께서 스미다구(墨田)에서 찾아낸 학살의 증언 중 일부로서, 지난 5월 2일에 번역한 내용 중의 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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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가기 https://us02web.zoom.us/j/7485076506
바로가기 https://us02web.zoom.us/j/7485076506

 

아사오카 시게조

요츠기바시 다리 남쪽 스미다구 강변에서는 약 열명 씩 조선인을 묶어서 늘어세우고, 군대가 기관총으로 쏴죽였죠. 아직 죽지 않은 사람을, 트로코(운반차) 선로에 늘어놓고 석유를 뿌려서 태웠어요. 그리고 다리 밑 부근에 3곳 정도 큰 구덩이를 파서 묻고 위에서 흙으로 덮었어요.

2, 3년 지났을 무렵, 거긴 웅덩이로 되어 있었어요. 풀이 자라고 있었지만 움푹 파여 있었죠. 분명히 썩었던 때문일 것이죠. 끔찍한 일을 했어요. 지금도 뼈가 나오지 않을까요.

군대가 트럭에 죽은 조선인을 켜켜이 실어왔다. 또 강변에서 죽인 것도 있습니다. 그냥 보통의 조선인입니다. 손이 묶인 채 살해당한 것도 일본인이 아니라 조선인이라고 생각했지요. 돌려세워두고 등에서 쐈어요. 군대가 기관총으로 쏘아 죽이고 아직 죽지 않은 사람은 나중에 권총으로 쏘았어요.

수도 철관 다리의 북측에서 옛 요츠기 다리 근처에 큰 구멍을 파고 묻었습니다. 시체는 몇백명이었을 거에요. 【생략】 정말 끔찍한 일을 한 것입니다.

(관동대지진시에 학살된 조선인의 유골을 발굴하고 추도하는 모임 「바람이여 봉선화의 노래를 전해다오--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로부터 70년』교육 사료 출판회, 1992년)"

아사오카 시게조

죽이는 걸 보고있으면요, 나쁜 짓을 하니까 당연히 죽음 당해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그건 헛소문이였다고, 그렇게 살해당했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좋지 않았어요.

만약 일본인이 조선에 가서 이런 일을 당하면 살해 당한 사람은 어떤 기분일까 생각했죠. 나중에 정말 저는 이상한 기분이 되었습니다. 왜 그런 헛소문이 돌았는지 궁금해서. 그러니까 그 후, 1년이나 2년이 지나서, 이 근처에 꽃이랑 향을 바치는 사람이 많이 있었어요.

( 오충공감독의 다큐멘터리 "감춰진 손톱 자국"에서 )

<관동대지진시에 학살된 조선인의 유골을 발굴하고 추도하는 모임> 『바람이여 봉선화의 노래를 전해다오--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로부터 70년』교육 사료 출판회,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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