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狂氣)로 가득찬 '조센진(朝鮮人) 사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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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狂氣)로 가득찬 '조센진(朝鮮人) 사냥'
  • 1923번역학습팀
  • 승인 2022.11.18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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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못으로 도망친 조선인을 죽창으로 찔러죽이고, 여성의 급소에 죽창을 꽂아넣기도..
- 간토학살의 증언, 학습 및 번역모임, 스미다구 편 두번째

"잔인하게 학살하는 것을 보고도 그냥 지켜볼 수 밨에 없었어요" - 스즈키[가명]

9월 1일은 빨리 도망쳐 밤에는 아마미야가하라의 빈터에 갔습니다. 도부선 오무라이역 근처의 큰 연못으로 동양 모슬린 섬유 공장(도쿄 모슬린 섬유 공장 카메이도 공장이라고 생각된다)의 여공들도 수천명인지 전원 피난해 와 있었습니다. 다른 일반인들도 있었습니다. 그 때 '조센진 소란'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어요. 이른바, '조센진이 모슬린 섬유 공장의 여공한테 추근거렸다'든가, '도둑질을 했다'든가 하는 유언비어가 나돌아, 이른바 '조센진 사냥'이 시작되었습니다.
조선인도 연못으로 도망치자, 그 연못에서 조선인을 죽창으로 죽였어요. 2~3명이 살해 당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연못에서 살해 당한 한명은 여성이었는데, 이 사람을 붙잡아 와서 죽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손을 비비며 살려달라 애원했지만 다들 흥분하여 결국 조선인을 죽여버립니다. 도랑 속에서 굴리거나 급소를 죽창으로 찔러넣어 죽이는 것도 보았습니다. 실제로 눈 앞에서 그러한 일어난 일이 벌어졌지만, 말리지도 못한 채 그냥 망연히 지켜보기만 하고 있었습니다. 
(관동대지진시에 학살된 조센진의 유골을 발굴하고 추도하는 모임 『바람이요 봉선화의 노래를 전하여라ー 관동대지진·조센진 학살로부터 70년』교육사료 출판회, 1992년)

죽은 듯이 지새운 밤 - 마루야마 마스코 【2일 밤, 피난처인 아마미야가하라에서】

을씨년스럽게 어두워지는 해질녘이었습니다. 오두막에 들어가자 곧 "여자와 아이는 한밤중 외출을 하지 말아라. 식구마다 1명씩 순찰하러 나오라"는 연락이 돌았습니다. 장년 남자가 없는 이유로, 우리는 제외되었습니다만, 그 밤은 하룻밤 중, 곳곳에서 나는 구호 소리나, 호각소리, 달려가는 발소리로, 잔뜩 겁을 집어먹은 채, 죽은 듯이 밤을 세웠습니다.
(지진 재해 공동 기금회 편 「11시 58분--현상 지진 재해 실화집」도쿄 아사히 신문사, 1930년)

"회칼로 가슴에서 XX까지 회칼로 찢어" - 미야자와[가명]

우리는 처음, 지금의 긴시 공원 빈터로 도망쳐, 가메이도 덴진까지 갔습니다만, 불씨들이 휘날려 많은 사람들과 오무라이쪽 아마미야가하라로 도망 갔습니다.
〔생략〕

1일 새벽에 '조센진(朝鮮人) 소란'이 있었어요. 「어이, 거기」라고 서로 부르며, 도망칠 수 없게 둘러싸고, 통나무 막대나 철봉으로 때려 죽이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죽지 않으면 횟집 젊은이가 (조선인 위에) 걸터앉아 회칼로 가슴에서 성기까지 찢어 버리고, 나무 막대 등으로 내장을 긁어내고 있었다. 〔생략〕 이 이야기는 아버지한테서 들었습니다.
〔생략〕

아마미야 빈터에서는 아침이 되자 물에 불은 시체가 동아줄로 묶여, 내버려진 채 있었습니다. 2, 3명이 살해되어 있었습니다. 불타는 쪽에서는 '펑! 펑!' 큰 소리가 났는데, 그것이 '조센진이 폭탄을 던진 것'이라고 떠들어 대거나 했습니다.
(관동대지진시에 학살된 조선인의 유골을 발굴하고 추도하는 모임 『바람이여 봉선화의 노래를 전해다오ー 관동대지진·조선인 학살로부터 70년』교육사료 출판회, 1992년)

 

'후테이 센진 습격'이란 유언비어로 휩싸인 고토구(江東区) - 요시카와 미츠사다[검찰관]

2일 오후 7시경 가메이도 경찰서에 피난민 남자와 등불을 가진 재향군인이 출두해, “우리들은 피난민인데, 자기들 피난 장소로부터 약 18미터 정도 떨어진 아마미야가하라에는 센진이 40~50명 모여 조선말이라 잘 모르겠지만 뭔가 나쁜 짓을 꾸미고 있는 모양이다. 위험하니까 바로 보호해주길 바란다"라고 요청했다. 그래서 이 경찰서 근무의 경부보가 이 2명의 남자와 같이 가메이도 정류장에 가서, 거기에 주둔중인 군대에 이 요청을 전했더니, 군대는 즉시, 어느 중위가 26명의 병사를 인솔해 아마미야가하라로 향하게 되었다.
마침 이때 해당 군대에 대해 계엄본부로부터 아래와 같은 명령이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즉 그 명령이란 '방금 후테이 센진 (不逞鮮人) 약 200명이 다마가와 미조노구치 마을 방면에서 처들어와서, 담배 가게를 습격하고 있어, 현재 토벌대를 파견중, 군대는 한층 더 긴장하라'는 취지였다고 한다. 그러한 명령이 있었다는 사실이 전해지자, 위와 같이 '센진은 나쁜 녀석이다'라는 헛소문이 퍼져서 금방 '후테이 센진 습격'이란 유언비어가 되어, 고토구 (江東区) 방면 일대는 이 날 오후 7, 8시경, 이러한 유언비어로 휩싸이게 되었다.
(요시카와 미츠사다 『관동대지진의 치안 회고』법무부 특별심사국, 1949년)

 

"우케지의 센진 살해는 무죄" - 『도쿄 일일 신문』(1924년 9월 17일)

부하 아즈마마치 우케지 116 자산가 요코야마 킨노스케(30), 토노기주쿠리 나오시치(41), 나가사와 하치로(21), 하시모토 토쿠지로(42), 이케다 야스타로(29)의 5명은 작년 9월 5일 아즈마 우케지 토비키 이나리 열차 건널목에서 센진 최선 외 2명을 도끼로 살해한 혐의로 카메이도 경찰서에 검거되어 살인죄로 도쿄 지방 법원에서 심리 중이었으나, 16일 오전 10시 동 법원 형사 1부 쿠보 재판장 나가이 검사 담당으로 공판이 되어 증거 불충분으로 5명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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