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회 간토대학살한일시민공동번역*학습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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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 간토대학살한일시민공동번역*학습모임
  • 미디어기평 기자
  • 승인 2021.10.04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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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최 : 1923한일재일시민연대, 기억과평화를위한1923역사관
- 도쿄지역 오타구(大田区)에서 일어난 학살(2)
한일시민들의 간토학살증언 공동번역&학습 - 오타구에서 일어난학살
한일시민들의 간토학살증언 공동번역&학습 - 오타구에서 일어난학살

"(2 저녁) 그러자 갑자기 목수가 안색이 변해 달려 와서, 지금 조선인들과 중국인들 30여명이 칼을 빼 들고 몰려 왔으니까 빨리 도망치세요라고 했다. 목수의 모습은 바로 턱밑까지 밀어닥쳐 듯한 말투였다. 그때 갑자기 경종이 울리기 시작하면서 바깥은 시끄러워 졌다. 우리는 거짓말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로 생각되어 상당히 당황했다.

(략) 우리는 조그마한 소나무 숲으로 그늘진 언덕 위로 숨을 헐떡이며 올라갔지만 처음부터 그곳도 적당한 피난처가 아니었다. 더불어 병자(어머니) 애들도 함께 데리고 갔기 때문에 서두르지 못했다. (략) 소나무 바로 밑에서는 총소리가 들렸으며,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 애들의 울음소리가 끊임없이 난타되는 경종 소리에섞여서 들려 왔다. 머리 속을 훈족(역자주:4-6세기에 걸쳐서 중앙 아시아와 동유럽에 살고 있던 유목민들)들이 침략할 때의 광경과 겹쳐서 지나갔다. 실제로 이상하게 외쳐댔던 소리는 야만인, 그것도 동양인듯한 이상하고 치적치적하게 지독한 짓을 같은 무서운 장면을 연상하게 만들었다. (결국 그 외침은 개가 짓는 소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 ) 전등들이 꺼지자 깜깜하게 되자 이젠 괜찮겠지 해서 집으로 갔다. 그러나 몇 번이나 조선인들이 왔다고 하기에 어둠 속에 숨어야 했다. 그날 밤에는 밤새도록 경종이 울렸. 동네에서는 조선인들이 요코하마 쪽에서 들어오고 ×××× ××××××잡힌 같았지만, 자경대 조직이 만들어지고, 잠시 지진도 잠잠해져서 흐트러지고 어지로운 상태였지만 침착해 졌음. (략) "

1924년, 작가였던 구라타 하쿠조의 <진재소감>을 쓴 글이다. 어디선가 알 수 없는 유언비어는 군부대를 통해 전국으로 타전되었고, 현청으로 공문으로 보내져 근거도 없는 유언비어가 사실화되어 이제 일본 민중들은 대부분 조선인과 중국인들을 두려운 존재로 여겨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부족한 노동력을 채우기 위해 조선과 중국 등지에서 일본으로 들어온 이주노동자들은 갑자기 칼을 빼어든 폭도가 되었을 뿐 아니라 내란을 일으키는 두려운 존재가 되었다. 단 며칠만에, 자신들의 왜 폭도가 되어야 했고, 왜 반란의 수괴로 되었는지를 알지 못한 채 곳곳에서 체포되고 끌려가고 학살의 대상이 되었다.  
위급한 시기에 울리는 경종(警鐘)이 일본 간토지역에서 얼마나 자주 또 언제까지 타종되었을까? 타종되는 그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곳곳에서 조선인 사냥이 시작되었다. 

요코하마에서의 학살을 설명하는 야마모토 스미코(2013년 민간조사단방문)(가나가와추도및조사위원회 전 위원장)
요코하마에서의 학살을 설명하는 야마모토 스미코(2013년 민간조사단방문)(가나가와추도및조사위원회 전 위원장)


"이것은 7일 밤에 오모리에서 하룻 밤을 묵게 해 준 동료와 그의 여동생이 번갈아 가면서 말해 준 극히 짧은 이야기이다. 3일인가 4일에 해안에서 자경단원들이 7-8명의 조선인들을 생포해 버렸어요. 아마 7-8명이 함께 있었으니까 저항도 했겠죠. 그것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렇지 않아도 광기에 빠진 사람들은 더욱 더 흥분해서 조선인 모두를 배에 철사로 묶어서 석유를 뿌려 불을 붙인 후에 바다로 떠내려 보냈다고 하네요.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말했다." 

1927년 요코하마 시청에 보관된 요코하마 市史에 실려있는 기록 중의 일부이다. 조선인들이 어떤 나쁜 일을 했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단지 '조선인'이기에 자경단원들에게 체포되었고, 살자고 저항한 것은 일본들들에게 위협적인 행동을 하였다고 판단했는지 자경단원들은 조선인들을 배에 철사줄로 묶어서 석유를 뿌려 바다로 떠내려 보냈다는 것인다.

조선인이 학살되어 떠내려 간 요코하마 앞바다에 꽃으로 위령의 마음을 전한다. (2014년 "1923한일재일시민연대"가 주최한 한일재일대학생공동조사 활동 中)
조선인이 학살되어 떠내려 간 요코하마 앞바다에 꽃으로 위령의 마음을 전한다. (2014년 "1923한일재일시민연대"가 주최한 한일재일대학생공동조사 활동 中)

유언비어와 일치하는 내란에 준하는 행위를 하는 조선인을 체포하여 조사를 통해 피할 수 없는 증거를 제시하여 재판을 통해 법에 준하는 절차가 진행된 사례에 대하여 필자는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재판 이외에는 알지 못한다. 대부분이 계엄령에 의한 즉결심판(현장에서 사형집행)이 군대와 경찰에 의해 이루어졌고, 민간 자경단들도 반항하는 조선인들은 '죽여도 좋은 애국행위'로 이해되고 있었다. 

군대와 경찰은 즉결심판(사형)을 하였지만, 민간 자경단들은 단순한 사형이 아니라 조선인 사냥이었고, 영화에나 나올 법한 살인귀들의 잔혹한 처형을 보여주고 있다. 

공동번역&학습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한일시민들
공동번역&학습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한일시민들

12회째 진행하고 있는 공동번역&학습모임은 10월 5일(화) 오후 7시 30분이 시작하여 두 시간가량 진행된다. 이번 번역발표는 조영석목사께서 맡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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