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에게 다가 온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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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에게 다가 온 세상
  • 김종수
  • 승인 2020.07.01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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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지바에서 학살당한 조선인을 목격한 야끼가야타에코 선생님의 이야기

소녀에게 다가 온 세상

김종수

 

故 야끼가야타에코 (2006)
故 야끼가야타에코 (2006)

지바 다카츠언덕에 종이 울렸다.

고무줄 놀이하던 10세 소녀 타에코는
몰려가는 어른들을 따라 다카츠언덕으로
향했다.
먹이를 향해 줄잇는 개미 떼처럼
후나바시 수용소에서 보내온 사냥감에
자경단의 총칼은 때를 만났고
마을에는 요란한 종소리가 울린다.
"캉캉캉!"

동물 꽤나 잡았을
자경단 기미즈카 쿠니하루는
수용소에서 불하(不下)한 '조선인'을 소나무에 묶은 채
내키지 않은 사냥인양
물도 타지 않은 고구마 술을 들이키듯 붓고
겁먹은 조선의 작은 몸뚱아리에게 묻는다.
"총으로 쏠까? 칼로 벨까?"

마지막 성찬이 된 고구마 소주는
진실에 목마른 조선청년을 적시고,
두려움에 떨며 숨어 보는 타에코의 눈에
조선 청년의 눈빛이 꽂히고,
타에코는 그 청년의 눈빛을 읽었다.
'말해줘!  말.해..줘...'

 

 

탕! 한방은
조선청년의 눈빛에 촛점을 빼앗고,
탕! 또 한발로
현해탄 밤바다보다 어두운 검붉은 핏줄기가
언젠가는 희망으로 두근대던 조선청년의 가슴을 쿨럭거린다.
그리고 마지막 한발의 확인사살
"탕!"

진실을 품은 그 작은 몸뚱아리는
저들이 파놓은 거짓의 함정으로 굴러 떨어지고
10세 소녀 타에코는 눈을 질끈 감는다.
보지 않아도 보이고
귀를 막아도 들리는
10세 소녀가 보고 들은 세상은
그렇게 다가왔고,
밤마다 찾아왔고,
꿈 속에 나타난 조선청년은
확인하듯 단말마로 사라진다.

"말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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