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토학살사건과 미담(美談)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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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토학살사건과 미담(美談)에 대하여
  • 김종수
  • 승인 2020.05.13 09: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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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비'를 바친 재일동포 2세 정종석(鄭宗碩)님의 이야기

자료제공 - 재일한인역사자료관, (일본)국가책임을 묻는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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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담(美談)에 대하여

김종수 대표 (1923한일재일시민연대 상임대표)


정종석(鄭宗碩)선생과의 만남은 2007년 간토학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한일재일시민연대를 결성 한 직후였다.  한일재일시민연대는 한국과 일본 그리고 일본에 사는 재일동포들을 학살사건의 각 주체로 세우자는 취지였다.
 

정종석선생은 한일재일시민연대의 재일동포 대표로 추대되었다. 그가 추대된 이유는 학살사건을 증언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증언자였기 때문이다. 그의 아버지 정두만(鄭斗滿)은 학살사건 당시 자신을 고용했던 공장장 사나다 치아키(真田千秋)가 자경단에 의해 조선인들이 죽어갈 때, 조선인 노동자들을 숨겨줌으로 인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정종석선생은 2001년, 아버지를 살려준 真田千秋씨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도쿄 스미다구 호센지에 '감사의 비'를 세웠다. 
 

오른쪽부터 정종석, 김종수, 히라카타치에코, 오오타케요네코, 조진경 (2008)
오른쪽부터 정종석, 김종수, 히라카타치에코, 오오타케요네코, 조진경 (2008)
2013년 '1923한일재일시민연대' 민간조사단을 공항에서 맞이하며 환영하는 정종석 대표
2013년 '1923한일재일시민연대' 민간조사단을 공항에서 맞이하며 환영하는 정종석 대표

 '미담(美談)'의 역설     

간토학살 당시 일본인들의 도움으로 살아남은 재일동포들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미담(美談)'에 대해서는 양가감정이 있었다. 원래 '미담(美談)'이란 특별하고 선한 이야기이다. 달리 말하면 일반적이지 않은, 흔하지 않은 이야기라는 의미이다.

일본 권력은 언론을 통해 이 특별한 '미담(美談)'을 언론을 통해 의도적으로 확산하였다. 더러는 당사자가 의도했든, 아니면 언론이 과장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진실과는 거리가 있는 부풀려진 '미담(美談)'이야기도 생성과 재생이 반복되었다. 

자기 마을에서 일어난 조선인 학살을 마치 짐승사냥과 별반 다르게 느끼지 못한 야만적인 일본인들도 있었지만 보통의 일본인들은 곳곳에서 벌어지는 학살의 섬짓한 광경을 목격하고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는 이들이 많았다. 더러는 마을에서 끔찍하게 학살당한 조선인들을 위령하고 마을의 안녕을 위해 피학살자의 추도비를 세우기도 하였다. 
 
사건과 직간접으로 엮이지 않는 일본의 국민들은 지금까지 1923년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들의 방화, 약탈, 강도, 강간 등과 관련된 수많은 '사실'들이 있었고, 그것이 학살을 야기했으며, 그 학살 속에서 위기의 조선인들을 구해주었던 '미담(美談)'을 역사의 기억으로 재생하고 있다.

결국 이 '미담(美談)'은 군대, 경찰, 민간자경단까지 동원시킨 일본의 총체적 학살책임을 뒤로 물리고 또한 일본 국민들의 죄의식을 선한 시민의식으로 전환하는데 특별한 역할을 하였다. 학살에 참여했거나, 방조했거나, 침묵했던 비양심적 심리상태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사회심리적 기제로 작용한 '미담(美談)'은 결국 1923년  '大正の朝鮮人虐殺事件'의 진실을 왜곡, 은폐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미담(美談)'을 통한 학살사건의 기억

정종석님은 부친 정두만(鄭斗滿)에게 직접 들었던 사나다 치아키(真田千秋)의 '미담(美談)'을 통해 잊혀져가는 다이쇼 시대의 조선인학살사건을 증언해 왔다. 그의 증언은 '(피학살조선인의 유골을)발굴하고 추도하는 모임'과 '봉선화'회의 활동을 반대하고 방해하는 스미다구 지역주민들에게 실제 1923년 당시 학살사건이 존재했으며, 그 가운데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미담(美談)'을 전함으로써 사건의 조사와 사실규명이 필요함을 역설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정종석님은 한국의 유명한 도공 김구한을 만나 십장생이 그려진 특별한 '감사의 비'제작을 의뢰하였다. 일본 정부에 의한 의도적 '미담(美談)'이 학살사건의 본질을 호도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정종석님의 '감사의 비'는 '피학살조선인추도비'와 함께 잊혀져가는 학살의 기억을 되살리고, 일본사회에 잠복된 민족차별을 통한 제노사이드 바이러스가 언제 광풍처럼 다시 일어날 수 있음을 경고하기 위함이었다. (관련기사)
(https://mindan.org/old/kr/front/newsDetail3c5d.html?category=2&newsid=10966)

지난 2018년 95주기에 도쿄 YMCA에서 정종석선생을 만났다. 어느덧 76세이신 정선생님은 일본에서의 노년이 무척 힘들어 보였다.  간토학살을 비롯해 일제의 식민지범죄에 대한 크고 작은 집회에서 증언과 사진기록으로 간토진상조사활동의 역사를 써왔던 정종석 선생의 삶도 기억과평화관 한 켠에 자리하게 될 것이다. (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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