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와 개혁을 위해! 일곱번째, 고난주간 - 여섯째날 "전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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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개혁을 위해! 일곱번째, 고난주간 - 여섯째날 "전율"
  • 조정현 기자
  • 승인 2020.04.10 22: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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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 박경서목사

윤동주의 "서시" 그리고 "십자가" 라는 시가 떠올려지는 고난주간 토요일, 예수가 십자가에 달리어 돌아가시고 매달려 계신 날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 서시)

" 이 시를 대할 때 마다 예수의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기도가 떠올려진다.

"조금 나아가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마태복음 26장 39절)"

이같은 마지막 기도는 윤동주 시인의 서시에서는 "나한테 주어진 길을 (죽음이라 할지라도, 끝까지) 걸어가야겠다."는 표현으로 말하고 있다. 그 같은 길을 걸어가신 2000년 전, 예수의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신 모습을 바라다 보며 윤동주 시인은 또 "십자가" 라는 시를 통해 오늘날 우리들이 십자가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쫓아오는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읍니다.

 첨탑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 그리스도에게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어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윤동주 십자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교회당 꼭대기에 외로이 빛을 바라며 서있는 십자가는 어떤 의미일까? 이곳저곳 널부러져 우뚝 솟아 있는 의미 없는, 그저 교회당 붉은 십자가로 본질을 상실한 한국교회 부정적 이미지로 남아 있는 것은 아닐까? 분열과 갈등의 상처로 몸부림치는 한국교회, 빛과 소금의 사명을 잃어버려 내동댕이침을 당하는 한국교회, 이같은 교회의 모습이 일찌기 윤동주 시인에게는 어떻게 보였길래 이같은 시를 생각 한 것일까? 아마 윤동주 시인은 당시 현존에 멀기만 한 조국광복을 "십자가" 라는 시로 담아내고 싶었서리라! “쫓아오는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어 있네 첨탑이 저렇게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람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밑에 조용히 흘리리라” 생명과 평화를 위한 빛과 소금의 역할 앞에 먼 거리감으로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이는 오늘날의 한국교회의 모습속에 “너 위해 피 흘려주건만 날 무엇 주느냐”는 예수의 안타까운 음성이 하늘소낙비로 날마다 다시 들려오는 오늘날, 평화와 개혁을 향한 거룩한 희생 결의를 하며 보내야 하는 오늘이어야 함을 생각해본다.

시대의 변화에 몸부림치며 평화와 개혁을 위해 나아가도 부족할 판인데 대안과 성숙함을 제시하지 못한 채 교회개혁의 어려움과 장애에만 매달린 집착증 환자처럼 보이는 것을 넘어서 마치 '모두 같이 죽자!'라는 태도로만 일관하고들 있다. 무엇이 한국교회와 목회자들을 이렇게 나약하게 하는 것일까? 하늘 뜻대로 운행되는 그분의 섭리를 앎으로 끝내고, 신념과 행동의 괴리감을 보이는 것에 기인하는 것은 아닐까! 비장한 자기희생의 최후로 ‘괴로웠던 사나이’에서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로의 황홀한 지경에 이른 거듭남이 이루어져야 한다. 믿음으로 세상의 소망과 희망 길을 걷는 기쁨 안에서 행복한 예수처럼 살아가는 교회와 그리스도인들과 목회자들이 많아야 한다.

2020년 고난주간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다음날, 우리는 그리스도처럼 순절의 정신으로 우리를 향한 십자가가 허락되기를 기도해야 할 것이다. 종탑 꼭대기 외로운 십자가는 어두운 시대에 생명평화를 노래하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간섭하며 깨우고 있다. 아울러 이 시대를 사는 목회자의 희망과 목표를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는 그렇게 걸어 놓고 있다.

2020년 고난주간 토요일,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매달려 계신 고난주간 토요일, 윤동주 시인의 노랫말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가수 홍순관'님의 ‘십자가’ 노래를 흥얼거리며 우리가 섬기는 교회의 십자가 탑 아래로 나가 회개의 두손을 모으고 다시 한번 그분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묵상의 시간으로 보내는 날로 오늘 라루를 보내게 될 때 우리는 내일 부활하시는 예수를 희망으로 맞아 "평화와 개혁"으로 가는 한국교회를 세워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최헌국 목사)
 

 

오늘 말씀을 전하는 박경서목사입니다.
              *************** 조정현 목사

국회의원선거구가 같은 동네에 살고 있습니다. 한때는 집 사이가 채 10분도 않되는 곳에 살기도 했지요. 1990년대 후반 외국인노동자 선교를 하며 만남이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안산에서 박목사는 인천에서.. 저는 그 20여년 동안 잘 정착하지 못하고 이런저런 변화가 있었지만 박목사는 오늘도 여전히 그때 그 자리에서 이주민선교와 목회를 감당하고 있습니다. 
저는 박목사를 끈기와 꿈. 이렇게 느낍니다.
박목사와 대화하다 보면 가능하지 않을 내일을 이야기 하는 듯 합니다. 그의 언어는 지금을 배제 하는 것 같지만, 자꾸 과거의 경험을 말하며 마치 지금을 지내고 있는 이들에 대해, 내일을 이야기 하며 지금의 자리를 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근래 박목사가 노래 부르고 다니는 일이 두가지가 있는데 그 하나가 ‘목회자 기본 소득’입니다. 기장교단에서 하고 있는 ‘생활보장제’를 넘어서는 제안입니다.  사회에서도 나오는 이 운동을 하나님 나라와 공동체를 이야기 하는 교단(교회)가 실행하지 못함에 대한 문제 제기입니다.
그리고 ‘인권’입니다. 이주 노동자 운동을 하며 오랜 시간 체화된 것이고,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라 그려려니 하지만, 일부의 극우 진영이 집단적으로 전선을 만들어 저항하기에 현장에서 ‘인권’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상징이 아니라 ‘투쟁’의 언어가 되어 있습니다.
이 두가지만 보더라고 오늘 내일 끝날 일이 아니지만 이러한 일들이 가져올 내일을 꿈 꾸며 끈기있게 오늘을 사는 목사입니다.
무엇보다도 박목사는 ‘더불어 있기’를 좋아합니다.
시간있을 때 편한자리, 존중받는 자리는 누구나 있겠지요. 하지만 박목사는 그 반대의 자리에도 있습니다. 얼굴만 비치고 비키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의 마무리를 함께 해 주지요. 주인공이 되어 부각되는 양지의 자리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도 자신이 이룬(?)일들 마저도 스스로 지워버린 후 항상 빈 자리를 만들고 그 자리에  ‘더불어’라는 것을 채우기를 소망하는 목사입니다.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사이 오늘.. 세상은 여전히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보여집니다.
모든 것이 침묵한 것 같은 오늘 박경서목사와 함께 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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