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타마에서는 공문으로 자경단 조직 명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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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타마에서는 공문으로 자경단 조직 명령
  • 김종수
  • 승인 2020.02.29 04: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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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의 공문으로 전달되는 거짓뉴스의 주 내용은 “불령선인의 맹동(盲動)”

사이타마현 내무부장은 2일 밤, 도쿄에서 “불령선인의 맹동(盲動)”이 있으니 현내 각 행정구역 당국자들은 “유사 시 적당한 방책을 취하도록”이라는 내용을 전화로 이첩하였습니다. 
 이튿날부터 현내 각 지역에서 자경단이 결성되었습니다. 현 남쪽으로는 조선인을 포함한 피난민들이 속속들이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경찰은 조선인들을 검속하여 나카센도(中山道)를 통해 군마현(群馬県) 방면으로 보냈습니다. 그들이 현 북쪽에 도달한 4일 밤을 중심으로 자경단과 군중들에게 습격당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희생자는 구마가야(熊谷)57명, 혼죠(本庄)88명, 진보바라(神保原)42명, 현 전체로는 200여명에 달했습니다. 민중들이 조선인을 수용하는 경찰서를 습격하여 혼죠에서는 군대의 힘으로 그들을 막을 정도였습니다.

10월22일『東京日日新聞』,  11월 2일『東京日日新聞』​, ​​​​​​각 신문은 사이타마현이 군(郡)을 통해 그 밑의 관할행정구역에 “불령선인폭동”을 이첩했기 때문에 자경단에 의한 조선인 학살을 더 확대시켰다고 보도했다.
10월22일『東京日日新聞』,  11월 2일『東京日日新聞』​, ​​​​​​각 신문은 사이타마현이 군(郡)을 통해 그 밑의 관할행정구역에 “불령선인폭동”을 이첩했기 때문에 자경단에 의한 조선인 학살을 더 확대시켰다고 보도했다.
증언 진보바라 야마시타 키요시(神保原 山下清 당시 소방단원
증언 진보바라 야마시타 키요시(神保原 山下清 당시 소방단원

 

종(비상시나 시각을 알리는 종)이 마구 울려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학살했다.
증언 진보바라 야마시타 키요시(神保原 山下清 당시 소방단원)


4일 저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화재를 알리는 종이 마구 울렸습니다. 혼죠의 유치장에 수용되어 있던 조선인 노무자들을 현 밖으로 내보내기 위해 지나가고 있었죠…현 경계 쪽에서 그쪽(군마현)이 조선인들을 인수하지 않고 도로 되돌려 보낸다는 정보를 듣고는 잡화상 앞에 있던 나뭇가지 다발을 끌어 내어 쌓아 올렸습니다. 그리고 트럭을 멈춰 세웠어요, 2대였죠.
 종이 울렸기 때문에 모두들 모여 들었는데 네 마을의 소방단원 전원과 그 밖의 사람들도 있었으니까 꽤 많았습니다. 종이 마구 울렸을 때 파출소 순사부장이 필사적으로 말렸지만 오히려 모인 사람들에게 쫓겨나 달아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트럭이 멈추자마자 나무다발을 던지면서 나무 막대기를 들고 때렸어요.
 순사부장도 도망가 버렸고 운전수도 얼굴이 피범벅이 되어 도망갔어요, 그 당시 혼죠의 바바(馬場)라고 하는 신문기자가 서서 말렸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진보바라에서는 군마에 조선인들을 보내려 했지만 보내지 못하고 되돌아 오는 트럭을 폭도화한 군중들이 습격했다.>
- 증언은 간토대진재60주년 조선인희생자조사추도사업실행위원회 편 -『かくされていた歴史』에서 작성.

 

요시노 사쿠조(吉野作造)『圧迫と虐殺』원고(도쿄대학 메이지신문잡지문고소장)
요시노 사쿠조(吉野作造)『圧迫と虐殺』원고(도쿄대학 메이지신문잡지문고소장)

잡지 가이조사(改造社)의 의뢰로 관, 군의 책임과 희생자 조사에 대해 글을 썼지만 공표를 금지당했다. “현내 행정구역의 당국자들은 재향군인, 소방대, 청년당 등과 일치협력하여 경계”하라고 지시한 사이타마현의 이첩도 수록되어 있다.
 

이상 자료제공 - 재일한인역사자료관, 국가책임을 묻는 모임

간토대지진당시 학살당한 6,661인의 유족이 되어주세요. 지금, 바로! 여기를 클릭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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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가 마을마다 자경단 조직을 명령하고, 조선인을 체포하고 처벌할 것을 명령했다.  

김종수 대표(1923한일재일시민연대)

  


정부의 공문으로 인해 군중들은 떠도는 거짓뉴스들이 사실이라고 확신했다.

천재지변이 일어나는 상황에서 정확하고 신속한 언론보도가 있다면 이재민의 불안감은 크게 줄어들게 된다. 그러나 당시 언론사 역시 건물이 부서진 상황에서 제대로 된 언론의 기능을 할 수 없었다. 그러한 때에, 정부 행정기관으로부터 지역 관공서에 전달되어지는 공문은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고 경찰이 거리에 붙이는 벽보는 국가가 전하는 메시지였다. 

하지만 일본정부는 확인되지 않은 아니 실제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기 때문에 확인할 수 없는 거짓뉴스를 '불령선인들의 맹동(盲動)'이 있다고 사실화하고, 이에 대한 대처로 마을의 소방단원을 중심으로 자경단을 조직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전달하였다.    

 

언론을 통해 유포된 기사들은 계엄령을 정당화하기 위해 조작된 거짓뉴스였다.

9월 4일, 5일에 발행된 각 지역 언론의 기사들
9월 4일, 5일에 발행된 각 지역 언론의 기사들

'불령선인'(일본어: 不逞鮮人 후테이센진)은 일본 제국이 일제 강점기 식민지통치에 반대하는 조선인을 불온하고 불량한 인물로 지칭한 용어이다. 사이타마현에 전달된 공문에 의하면 '불령선인의 맹동'을 맏아내기 위허여 자경단을 조직하라는 명령이었다. 

학살의 좀비가 되어버린 일본 민중들

9월 4일과 5일에 신문은 사람들 사이에 떠도는 유언비어가 결국 사실이었음을 믿도록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 내용은 일본 사회를 완전히 전복시기기 위한 거짓뉴스들로 가득했다. 가정을 파괴하기 위해 부녀자들만 있는 집에 침입하여 강간, 윤간으로 능욕하고 강도짓을 했다고 보도하는가 하면, 마을공동체를 파괴하기 위해서는 우물에 독을 풀었다고도 했다. 그리고 산업시설에 불을 지르고 폭파하였다는 보도도 있었다. 이렇게 유언비어들이 언론을 통해 사실처럼 보도되자 일본 국민들은 유언비어(風說-풍설)이 거짓이 아니라고 확신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됨으로써 일본의 민중들은 조선인들에 대한 끓어오르는 적개심으로 너도나도 자경단에 가입하여 조선인을 색출하고 조금이라도 반항하면 그 자리에서 학살하였으며, 온갖 도구들이 살인의 무기가 되었고, 단시간에 걷잡을 수없는 학살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조심스럽게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기 시작하는 일본의 언론들

지진으로 인한 극도의 혼란이 가라앉게 되면서, 그리고 재난 가운데 선포된 계엄령으로 인해 조선인학살의 광풍이 일어나게 하는데 일조를 하였던 언론들도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사이타마에서 일어난 학살의 광풍은 사이나마 현이 “불령선인폭동”이라는 공문을 이첩했기 때문에 자경단에 의한 조선인 학살을 더 확대시켰다고 보도하였다. 언론이 정부의 책임을 묻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논조는 매우 조심스럽게 표현하였다.
신문은 현청(県庁)이 '불령선인폭동"이라는 공문을 전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자경단을 조직해 마을과 가정을 지키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면 이런 잔혹한 학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너무도 잔혹했던 학살의 공범이었던 언론도, 불과 한 주간도 안되는 기간동안 6천여 명의 조선인을 학살의 광풍이 불어 미쳐버린 좀비들이 되어버린 시간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어려웠을 것이고, 그래서 또한 스스로를 용남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게 히면서도 또 가장 큰 책임을 물어야 할 그 누군가를 찾으려 했을 것이다. 
 

 

#간토조선인학살, #관동대지진, #1923한일재일시민연대, #1923기억과평화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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