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코하마에서 일어난 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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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하마에서 일어난 학살
  • 김종수
  • 승인 2020.02.26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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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코하마 각 지역에서 자행된 조선인 사냥의 목격자들

 

지도 내 ○안의 숫자는 학살된 시체의 조사 횟수​​​​​​​A~Q는 증언이 남아 있는 장소. 증언은 발췌. 원문 그대로.초등학교 이름은 진재관련 작문이 남아 있는 학교지역 내 회색 칠한 곳은 화재소실지역지도는 『横浜新地図』(1923년), 『横浜大地図』(대지진화재구역)로 작성
지도 내 ○안의 숫자는 학살된 시체의 조사 횟수
A~Q는 증언이 남아 있는 장소. 증언은 발췌. 원문 그대로.
초등학교 이름은 진재관련 작문이 남아 있는 학교
지역 내 회색 칠한 곳은 화재소실지역
지도는 『横浜新地図』(1923년), 『横浜大地図』(대지진화재구역)로 작성

 

A<나마무기(生麦), 쓰루미(鶴見)>
나마무기에서 쓰루미로 향했다. 이 동네의 장정들도 칼이나 죽창을 들고 돌아다니고 있다. 길 옆에서 참살된 시체 5, 6구를 봤다. 너무나 잔혹한 살해 방법이었기에 글로 남기는 것도 싫다
(나가오카 쿠마오(長岡熊雄) 판사)

B<히가시카나가와(東神奈川)>
(3일) 한 마을을 지날 때마다 검문을 당하며 요코하마에서 도카이도(東海道)로 나온 기자는 걸어서 도쿄에 가기로 마음 먹고 기마병들이 어지럽게 달려간 길을 한발씩 걸어간다. 경계가 엄중하여 도로에는 약 100m마다 청년단, 소방대, 국수회원 등이 긴 칼, 작은 총, 창을 들고는 검문소를 차리고 있다. 히가시카나가와에 도착했을 때 3명의 ○○(선인)이 기병대에게 무자비하게 내몰려 도로로 튀어 나왔는데 바로 직후 ○○(살해)당하고 말았다.
<시오자와 모토하루(塩澤元治)『大阪時事新報』1923. 9. 6>

C<가나가와 구리타야(神奈川栗田谷)>

D<가나가와 소리마치(神奈川反町)>
(2일) 밤 10시 넘었을 때쯤부터 각 방면에서 총성과 함성이 들려오기 시작하고 제등의 불이 수없이 벌판을 날고 있다. 때때로 무장한 청년의 전령이 달려 와서 “주의하십시오. 지금 수상한 사람 수십 명이 이 쪽으로 들어온 흔적이 있습니다”등…이날 밤 선인 17, 18명이 소리마치 유곽 뒤쪽에서 참살당했다.(야기 쿠마지로(八木熊次郎「関東大震災日記」)

E<다카시마쵸(高島町)>
F<요코하마 역 앞>
G<가나카와현립 제1중학교 부근>

H<구보야마(久保山)>
전봇대에 밧줄로 손이 뒤로 묶인 조선인의 시체를 목격했다. 피범벅이었다. 가족들은 말없이 지나쳤다. 그 후 가족들 중 이 날의 일을 입밖에 꺼내는 일은 없었다.( 당시 초등학교 2학년, 『朝日新聞』1993.8.31)

I<스이도야마(水道山)>
J<미나미오타(南太田)>
K<고토부키(壽)경찰서>
L<고토부키쵸(壽町) 인근 산>
M<헤라쿠(平楽)요코하마식목회사 부근, 이시카와(石川)부근>

N<나카무라쵸(中村町)>
무엇보다 백주 대낮의 살인극이었으니까요…전봇대에 쇠줄로 묶고는 때리고 차고 목공용 쇠갈고리로 머리에 구멍을 내고…그 중에서도 강에 뛰어 든 조선인을 쫓아 일본인이 배로 쫓아가는 광경…수면 위로 얼굴을 내밀 수 있었던 조선인은 반도 안 되었어요. 일본인들은…전속력으로 돌진하기 시작했어요…조선인들의 머리를 노리고 쇠갈고리가 날아가 푹 하는 소리와 함께 피가 뿜어져 나와 그 일대는 새빨갛게 물들어 갔다. 그래도 성이 차지 않은지 쇠갈고리로 조선인들을 찍어서는 배 쪽으로 질질 끌고 와서 칼로 베어 버렸다…살점이 뜯어져 나와 이미 사람 얼굴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미타 켄지로(美田賢二郎)자영업 『潮』184호)

O<이소고(磯子) 부근>
조선인들이 도망갔기 때문에 어른들은 모두 쇠막대기를 들고 조선인 정벌에 나섰습니다. 그리고는 감옥 간수들은 총으로 쏘거나 쇠막대기로 조선인들을 굴려서는 감옥 앞의 바다에서 떠내려 보냈습니다. (스가타니 이사(菅谷イサ) 이소고초등학교 5학년)

P<네기시 호리와리 강(根岸掘割川) 야와타(八幡)다리 부근>
Q<혼모쿠(本牧)>

 ㈜재일본간토지방이재동포위문반이 조사한 중간조사보고

참고문헌
横浜市役所編纂係『横浜市震災誌』요코하마시중앙도서관, 인터넷 공개
長岡熊雄 편『横浜地方裁判所震災略記』
琴秉洞 편『関東大震災朝鮮人虐殺問題関連史料Ⅰ』
이시카와심상소학교 진재작문(요코하마개항자료관 공개)
 

- 자료 제공 - 재일한인역사자료관, 국가책임을 묻는 모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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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의 증거는 차고 넘친다.

 

김종수(1923한일재일시민연대 대표)

 

아베 총리가 간토학살의 '증거가 없어 유감을 표할 이유가 없다'는 말은 정치지도자로서 해야할 말이 아니다. 일본의 연구자, 지역조사활동가들이 수십년간 조사하고 연구하면서 밝혀낸 사실만으로도 그 증거는 차고 넘친다.

국가는 은폐하고 시민은 발굴했다.

야마모토스미코 선생을 중심으로 많은 교사출신의 활동가들로 구성되어 있는 [간토대진재 조선인학살의 사실을 알리고 추도하는 가나가와 실행위원회]는 일본정부가 은폐하고 왜곡하고 있는 간토조선인의 학살사실과 올바른 역사교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으며. 여러 증언들을 모으고, 관계자료들을 찾아내어 진실의 조각을 맞추어 왔다.

학살된 조선인들을 기억하는 위령제가 해마다 열리고 있다. 

- "사건발생 100년이 되는 해(2023년)엔 간토학살역사관을 꼭 건립하자" 

2018년 9월1일에 가나가와의 구보산 앞에서 열린 95주기 추도식에서 한국의 1923한일재일시민연대 김종수 대표가 추도사를 발표하였다. 김종수 대표는 추도사에서 일본에서 어려운 과정에서 조사하고 모아 온 역사적 증거들을 모아 간토학살 100년이 되는 해에는 역사관을 만들자고 제안하며 한일재일이 힘으로 모아 반드시 이뤄내자고 힘주어 말하였다.  ​​​​​​​

1923한일재일시민연대 김종수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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